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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입사면접때 질문 못받아…전문대생은 ‘병풍’

등록 2013-04-17 20:00수정 2013-05-08 08:30

차별 대신 차이로-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6. 학력에 가로막힌 삶


“열심히 살아온 삶 자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
학력에 가로막힌 삶, 구체적 이행안 없인 ‘무용지물’
옆자리 지원자는 여유로웠다. “왜 우리 회사를 지원하나요? 더 큰 회사 갈 수도 있을 텐데.” “오래 다닐 수 있겠어요?” 쏟아지는 질문에 농담까지 섞어 답하는 모습이었다. 강성현(가명·25)씨는 일그러진 표정이 들킬세라 입꼬리에 힘을 줬다. 면접관들의 관심은 강씨의 몫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들러리였죠. 그렇게까지 ‘병풍’ 취급 받을 줄은 몰랐어요.” 강씨는 자포자기한 듯 보였다.

서울의 한 2년제 전문대학을 졸업한 강씨는 지난 2월 중견 무역회사의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 뒤로도 10여차례 중소업체 입사 전형에서 쓴잔을 들이켰다. 서러웠던 건 정작 불합격 탓이 아니었다. 이른바 ‘유명 4년제 대학’ 출신 지원자들에게만 몰린 면접관들의 관심이었다. 강씨는 2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스펙’(이력)이 많이 처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 성적도 좋았다. 토익 점수는 상위권이고 일본 교환학생 경험으로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열심히 살아온 삶 자체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았죠.” 강씨는 4년제 대학 편입을 위해 학원을 알아보는 중이다.

‘학벌’은 여전히 중요한 신분의 사다리다. 공기업과 대기업들이 고졸 채용을 늘린다지만 고졸자나 2년제 대학 졸업자들에게 취업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11년 벌인 ‘기업 채용과정의 차별 관행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년 안에 구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 545명 가운데 절반 이상(55.2%)이 ‘채용 과정에서 학력 차별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채용 관행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는 ‘출신 학교·학력에 의한 차별’(54.9%)이 1순위로 꼽혔다.

학력 문턱에서 좌절한 이들에게 안정적인 삶은 남의 얘기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를 보면, 대졸 이상의 비정규직 비율은 25.4%였지만 2년제 대학 졸업자는 36.2%, 고졸 취업자는 57.8%가 비정규직이었다. 고졸 취업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12년 전인 2001년(59.4%)에 견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채용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 신한은행은 ‘개인 신용평가 모형’을 도입해 2008년부터 학력에 따라 대출 금리를 차등 적용해 왔다. 대출 신청자가 고졸이면 13점, 석·박사는 54점 등으로 신용점수를 다르게 매겼다.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1만4100여명이 돈을 못 빌렸고 7만3700여명은 이자를 더 내야 했다. 경기도 성남시장학회는 2010년 성적 우수 장학생을 선발하면서 한 언론사의 대학평가 결과에 따라 상위권 대학 학생들에게만 가산점을 줘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받았다.

학력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재계의 반발은 거셌다. 2007년 10월 법무부는 학력을 비롯해 20여개의 차별금지 항목을 담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재계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출신 국가, 인종, 병력, 장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학력 등으로 발생하는 모든 차별에 대한 구제를 한데 묶은 포괄적 차별방지법안 3건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이철호 ‘학벌 없는 사회’ 운영위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내용에 ‘학력’ 항목이 들어간 것 자체가 학력 차별이 부당하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학력 차별 문제는 ‘기회 균등’의 문제인 만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 방안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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