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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새 세상 눈뜨게 한 도시산업선교회 교육 / 이총각

등록 2013-06-11 19:25수정 2013-06-11 21:16

1971년 3월18일 서울 영등포 한영섬유공업 노조원 김진수씨가 회사에서 불러들인 구사대가 휘두른 드라이버에 찔려 죽은 사건을 계기로 도시산업선교회와 박정희 정권은 유신 종말 때까지 대립의 길을 걸었다. 사진은 그해 6월25일에야 치러진 김씨의 장례식 장면.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71년 3월18일 서울 영등포 한영섬유공업 노조원 김진수씨가 회사에서 불러들인 구사대가 휘두른 드라이버에 찔려 죽은 사건을 계기로 도시산업선교회와 박정희 정권은 유신 종말 때까지 대립의 길을 걸었다. 사진은 그해 6월25일에야 치러진 김씨의 장례식 장면.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9
195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부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활동으로 시작한 산업전도는 이후 감리교회(1961), 성공회(1961) 기독교장로회(1963), 구세군(1965)의 산업전도운동으로 번져갔다. 68년 산업전도라는 용어 대신 도시산업선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조직하는 데 주력했다.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영구집권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해, 여성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와 더불어 도시산업선교회(산선)의 이런 노력이 있었다.

산선 조직 중에서도 감리교의 인천산선과 예수교장로회의 영등포산선이 특히 노동현장과 긴밀히 연결된 활동을 폈고, 여성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큰 힘이 되었다. 지오세가 강화도의 심도직물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면, 산선이 정부 정책을 대변하는 한국노총과 전면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건 71년 3월 발생한 한영섬유의 김진수 사건 때부터였다.

70년 12월28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영섬유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회사 쪽에서는 조합원 200여명을 강제퇴사시키는 등 노골적인 노조파괴공작을 벌여나갔다. 그 와중에 구사대 노동자가 휘두른 드라이버에 조합원 김진수가 맞아 사경을 헤매다 결국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상급노조인 한국노총과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더니, 급기야는 단순히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다툼으로 생긴 사고라며 회사 쪽을 대변하는 발표를 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 노조를 결성하고 활동에 나선 청계피복노조 간부들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민주노조들의 연대투쟁을 선도하며, 한영섬유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총 사무실로 쳐들어가 농성을 하도록 했다. 아들을 대신해 노조 활동을 함께 하던 이소선 어머니는 김진수가 있던 병원으로 쫓아가 아들 전태일의 죽음 이후 한달 남짓 만에 투쟁의 현장을 지켰다. 이런 상황에서 영등포산선은 모든 사후 수습을 한영섬유 분회와 함께 하며 한국노총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산선은 그동안 섬유본조와 한국노총 간부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해왔지만 이후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조화순 목사가 동일방직에서 노동체험을 한 것을 계기로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과 의식 고양에 정성을 다해온 인천산선은 동일방직에서 여성 지부장이 당선되자 누구보다 감격했다. 핍박당하며 제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애쓴 노력의 결실이었다. 오랜 관행을 깨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나선 동일방직 여성 조합원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마침내 틔운 싹이 무자비하게 밟히지 않게 잘 키워내는 게 당면과제였다.

인천산선은 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더불어 노동조합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오세 정신을 바탕으로 이제 막 노동조합운동에 뛰어든 이총각은 산선에서 교육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또 그곳에서 만난 다른 사업장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많은 걸 알고 배울 수 있었다. 노동자를 위한 법이 있고, 노동자로서 그 법의 준수를 주장할 권리가 당연히 있었는데도 너무나 어리석게 굴종하며 살아온 세월이 억울했다. 총각의 심성 어느 구석엔가 단단하게 도사리고 있던 정의감이 봉인을 풀고 나와, 그의 삶을 흔들림 없는 정신으로 무장시켜 갔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산선 회원들은 각자 자기 부서의 조합원들을 모아 소모임을 만들어 산선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했다. 거의 대부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맛있는 것도 같이 해먹고 등산도 다니며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것도 좋아했다. 소모임을 통해 지오세 활동을 배웠던 총각도 그들과 함께 산선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산선의 다양한 교육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해주었다. 함께한 동료들과 연대감은 물론이고 노조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각성은 모두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게 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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