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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잊지 못할 인연들과 YH노조의 탄생 / 이총각

등록 2013-06-18 19:34수정 2013-06-21 14:05

이총각(오른쪽 사진 둘째)은 1975년부터 동일방직 노조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전국본부 상근 활동가 이경심 세실리아(왼쪽)를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지오세에서는 79년 6월 31살 이른 나이에 병사한 이경심을 노동열사로 해마다 기리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80년 6월 당시 지오세 전국 지도신부인 전미카엘 신부(맨 왼쪽) 등과 참배 갔을 때.
이총각(오른쪽 사진 둘째)은 1975년부터 동일방직 노조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전국본부 상근 활동가 이경심 세실리아(왼쪽)를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지오세에서는 79년 6월 31살 이른 나이에 병사한 이경심을 노동열사로 해마다 기리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80년 6월 당시 지오세 전국 지도신부인 전미카엘 신부(맨 왼쪽) 등과 참배 갔을 때.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4
1975년 동일방직 노조 상근자로서 노조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이총각은 잊지 못할 인연들을 만난다. 그해 말 인천가톨릭회관에서 처음 만난 이경심 세실리아가 대표적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회원들과 함께 참석한 노동 관련 행사에서였다. 그는 73년부터 1년 동안 서울대교구 북부연합회 12대 여자회장을 지냈다. 그가 인천으로 온 건 지오세 전국본부 상근 활동가로 선정되어 인천교구연합회 회원들을 조직하고 지도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76년 동일방직을 시작으로 인천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한 그는 77년 2월1일 메리놀선교회에서 노동자 사목 전담 사제로 발령이 난 나마진(본명 마틴 로어리) 신부와 권조희 수녀 등과 함께 인천 부평 산곡동 판잣집에서 인천교구 부평노동자사목 실무자로 활동을 이어갔다.

노동사목은 노동자들이 교회를 통하여 참다운 영성생활과 올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 특히 노동조합 결성과 민주노조 사수 투쟁 등을 도왔다. 지오세 활동을 모태로 가톨릭의 정신에 따라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사목은 주교단의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해 서울·대구·수원에서는 교구의 이름으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천·부산·전주에서는 교구 산하의 조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경심은 49년 전북 부안에서 농사를 짓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1남8녀의 맏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마친 뒤 상경해 ‘버스 안내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69년 어느날 육교 위를 걷다가 내려다보이는 성당에 들어간 그는 마당 한쪽에 있는 성모상을 보는 순간 성당에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지오세 활동가가 되었다. 그는 혜양섬유, 동방섬유 등에 들어가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공장생활을 계속 할 수 없었던 건 태광산업의 노조 결성을 돕다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는 등 ‘요시찰’ 인물로 찍혔기 때문이었다. 총각보다 두 살 아래인 그는 똑똑하고 현실 인식이 뛰어나며 추진력이 있어 일을 잘 했다. 78년 동일방직 똥물투척 사건이 터지고 총각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해고된 이후의 투쟁까지도 함께 하며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도움을 많이 줬던 활동가였다. 그는 79년 4월 만성복막염으로 입원했다가 합볍증이 암으로 번져 6월 14일 안타깝게 31세의 나이로 귀천하고 만다.

이경심이 지오세 확장위원으로 동일방직 사건에 결합하면서 서울교구 북부연합회 확장위원으로 있던 이철순 마리아 역시 총각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경심은 이철순의 지도투사였다. 총각보다 7살 아래인 이철순은 고향인 안성에서 올라와 공무원 오빠 밑에서 야간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종로3가에 있었던 복지대학(지금은 강남사회복지대학) 야간반에 다니던 중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 받았던 엄청난 충격으로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무엇이었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영등포에 있는 성당에 무심코 들어간 그는 따뜻하고 성스러운 기운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을 보며 ‘인간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할 만큼의 사랑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의문이 시작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이후 이철순은 가톨릭 신자가 되어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고 지오세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73년 모든 걸 접고 화양동에 있는 대동화학에 입사해 노동운동가의 삶을 시작한다.

그 무렵 이철순은 뚝방길에 즐비하게 있는 술집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아르바이트로 일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특히 면목동에 있는 가발공장 와이에이치(YH)무역은 임금을 도급제로 지불하는 탓에 어떤 달은 기숙사비 3000원의 절반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고향 부모에게 돈도 부쳐야 하고 동생들 학비도 뒷바라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철순은 74년 지오세 회원을 통해 와이에이치 여성 노동자들을 소개받고 지오세 서울교구 북부연합회 양노엘 지도신부의 도움을 받아 노조 결성을 돕기로 했다. 조장을 비롯한 몇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굉장히 똑똑하고 헌신적이어서 급속도로 일이 진행되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그러던 중 75년 3월 건조반 감독 박월영에 대한 부당한 인사이동에 저항해 건조반 200명 전원이 상봉동 천주교회에 모여 파업 농성을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노동자들 스스로도 예상 못한 놀라운 단결력이었다. 이 사건은 노조 결성에 디딤돌이 되었지만 이철순과 긴밀하게 협조하며 핵심적으로 활동하던 건조반의 김경숙·박금순·이옥자·전정숙이 해고되었다. 하지만 노조 결성을 막으려는 회사 쪽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75년 5월24일 전국섬유노동조합본부(섬유본조) 회의실에서 53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최순영을 지부장으로 와이에이치무역 노조는 마침내 탄생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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