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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회사 지원받는 반조직파 대의원대회 점령 / 이총각

등록 2013-06-23 19:41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1976년 7월23일 법원의 명령으로 다시 열린 대의원대회에 앞서 이영숙 지부장이 경찰에 연행당한 데 이어 어용 남자 대의원들에 의해 집행부 불신임을 당하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그 무렵 노조 총무부장인 이총각(맨 안쪽)이 노조 사무실에서 운영위원회를 진행하는 모습.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1976년 7월23일 법원의 명령으로 다시 열린 대의원대회에 앞서 이영숙 지부장이 경찰에 연행당한 데 이어 어용 남자 대의원들에 의해 집행부 불신임을 당하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그 무렵 노조 총무부장인 이총각(맨 안쪽)이 노조 사무실에서 운영위원회를 진행하는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7
1976년 6월2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집행부는 “회사의 탄압을 두려워하는 대의원들을 대회에 불참시키고, 일부 대의원을 매수하고, 지부장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회사와 야합, 반조직 행위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고두영을 조합에서 제명하고 나머지 3명을 무기 정권시킬 것을 섬유산업노동조합본부(섬유본조)에 요청했다. 이에 섬유노조 제67차 중앙위원회는 진상을 조사해 고두영 등을 제명 처분했다.

그러자 고두영 등 반조직 남자 조합원들은 이 결정에 불복해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에 30만원의 공탁금을 걸고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반조직파 대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경기도에 대회소집권자 지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인천지법이 가처분 신청을 ‘이유 있다’고 인정하고, 경기도지사는 소집권자를 고두영으로 지명하고 7월23일 대의원대회를 다시 개최할 것을 명령했다.

그동안 회사 쪽에서 크고 작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 왔지만 이렇게 사법·행정까지 총동원돼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나선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총각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구속되고 해고도 되는 걸 많이 듣고 봐왔지만, 우리의 활동이 정당하므로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었다. 이제 걷는 이 길은 가시밭길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내가 쓰러지면 날 일으켜 세워 줄 동지들이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

상황은 이제 일촉즉발의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지난 4년 동안 힘들여 쌓아온 민주노조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그때 원동부에서 일하는 이병국이라는 남자 조합원의 제보가 들어왔다. 고두영 등 반조직파 조합원들이 인사과장의 지휘 아래 여관을 잡아놓고 노조를 파괴할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었다. 이영숙 집행부는 그들의 천인공노할 작태에 치를 떨며 곧바로 항의했다.

고두영과 이석주 등 남자 조합원들의 대다수가 회사 쪽의 눈치를 보며 반조직으로 행동을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 노동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병국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75년에 입사 동기의 권유로 대의원이 되었고 교선부 차장까지 했지만 그 역시 반조직파에 가담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점 노조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현 집행부를 뒤엎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듬해 친한 동료 박한용에게 대의원을 양보한 그는 이영숙 집행부가 반조직파에 당하고 있는 걸 안타깝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박한용 역시 반조직파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들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이병국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비밀회합이 들통나자 정보 제공자를 밝혀내려고 혈안이 된 인사과장은 이병국을 호출했다. 왜 대의원도 아니면서 나서서 혼란을 야기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 어느날은 동일방직의 담당 형사가 이병국을 불러 인적사항 등을 캐면서 은근히 겁을 줬다. 이병국은 이런 식으로 현 집행부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압력을 가하나 보다 생각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 자신의 심중을 들켜 그러나 저러나 눈총받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 그는 훗날 이총각 집행부에 참여해 부지부장을 맡으면서 줄곧 투쟁에 함께했고, 해고된 뒤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76년 7월22일 열린 제68차 섬유노조 중앙위원회는 고두영 등 4명에 대한 지부의 징계처분 결정을 재확인해주었다. 이렇게 본조의 지지를 얻은 집행부는 23일 대의원대회를 열 예정인 반조직파에 대항해 7월22일 저녁 7시 반 섬유본조의 임원이 참석한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가운데 보고대회를 열기로 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보고 장소인 식당의 불을 끄고 문도 잠가 조합원의 출입을 차단해버렸다. 황당한 상황에 분노한 조합원들이 보고대회를 요구하며 몰려다니자 경비와 사원들을 동원해 폭력으로 저지하였다.

결국 이튿날 아침 8시 이영숙 지부장이 경찰에 끌려갔다. 고두영 쪽에서는 오전 10시에 열릴 대의원대회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기숙사 문에 못질을 하고 현장 출입문은 잠가버렸다. 그렇게 고두영 지지 대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대회가 열려 고두영을 지부장으로 선출했다. 조합원들의 의사가 무시된 엉터리 대의원대회에서 현 집행부는 불신임되었고, 토의도 되지 않은 ‘규약 제34조 지부장 불신임 정족수에 대한 조항을 삭제한다’는 내용이 결의 사항으로 보고되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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