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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심야에 달려온 노동청 노정국장 / 이총각

등록 2013-07-02 19:32

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사건 수습투쟁위원 5명은 1977년 2월6일 ‘사건 해부식’을 결행하기에 앞서 섬유노동조합본부(섬유본조)를 찾아가 지원을 호소했으나 김영태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위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김영태는 79년 10·26 직전 한국노총위원장으로 당선돼 민주노조와 노동운동 탄압에 앞장선다.
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사건 수습투쟁위원 5명은 1977년 2월6일 ‘사건 해부식’을 결행하기에 앞서 섬유노동조합본부(섬유본조)를 찾아가 지원을 호소했으나 김영태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위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김영태는 79년 10·26 직전 한국노총위원장으로 당선돼 민주노조와 노동운동 탄압에 앞장선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4
동일방직사건 수습투쟁위원회는 1977년 2월6일 ‘사건 해부식’을 결행하기로 하고, 사회 각계각층을 방문해 후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노동조합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라 활동비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습투쟁위원 15명이 각자 어렵게 비용을 마련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인간(동지)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로 접어야 했던 희망은 이제 회사와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에 대한 분노와 민주노조 사수를 향한 열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투사 15명의 호소에 교회와 여성단체 등 10여개의 단체에서 후원을 약속했다.

이총각은 사건 해부식을 두고 천주교 부평노동사목 활동가 이경심과 의견을 나누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서울 명동성당 문화회관에서 지학순 주교를 모시고 행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당시엔 집회와 관련한 유인물을 아무 곳에서나 인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초청장 인쇄를 부탁하기 위해 지오세(가톨릭노동청년회) 서울북부연합회의 이철순을 만나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갔다.

그런데 2월1일 섬유본조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투쟁위원들은 마지막 호소를 할 셈으로 당시 서울 합정동에 있던 본조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본조 간부들은 역시나 나가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외면했다. 거기서 물러날 투쟁위원들이 아니었다. 재빨리 의장석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빼앗아 김영태 집행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시작하자 저지하는 본조 간부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었지만 악에 받친 여자들의 발악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정당성을 반박할 용기도, 그렇다고 자기들이 옳다는 걸 내세울 만한 근거도 없기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월2일, 이제 본조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투쟁위원들은 비밀리에 추진해온 사건 해부식 초청장과 호소문을 각계각층에 발송하기 시작했다. 단체들뿐만 아니라 교회·신문사·출판사·지인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수많은 초청장이 일시에 배달됐다. 그제야 정보를 입수한 회사와 관계기관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고는 투쟁위원인 정의숙·김인숙·정인자·최명희 등을 동부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하지만 초청장은 이미 전국에 뿌려졌고 투쟁위원들을 모두 잡아 가두어도 해부식은 진행될 것이었다.

비밀리에 준비해온 대규모 집회 계획이 공개되자 그동안 수수방관하던 관계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해부식이 열린다면 동일방직 노조를 둘러싼 온갖 음모와 탄압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고, 이를 계기로 동일방직 사태는 노동자와 학생, 시민이 연계된 투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사건 해부식을 이틀 앞둔 2월4일, 연행됐던 4명의 투쟁위원이 풀려났다. 그리고 잠시 피신해 있던 이총각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밤 11시를 넘은 심야에 노동청 노정국장 신연호가 동일방직 공장장실로 와서 합의를 위한 회의를 주선하고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총각·정의숙·김인숙·최명길·정인자 등 수습위원 5명은 곧바로 공장으로 달려가 밤새 토론을 거듭했다.

2월5일, 드디어 민주노조의 끈질긴 투쟁과 지혜가 승리를 거두었다. 노조 수습위원 5명은 당시 구월동에 있던 노동청 인천지방사무소에서 노정국장, 섬유노조 부위원장, 동일방직 사장(정종화)이 참석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합의문서에 서명을 했다. ‘첫째, 단체협약 중 사원의 노조 가입 문제는 배제하도록 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는다. 둘째, 대의원 선출은 자율적으로 하고 대의원대회는 노조가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도록 한다. 셋째, 회사는 어떠한 이유로도 조합원을 차별대우하는 일이 없도록 한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다. 넷째, 조합 내부 문제는 자체 해결토록 하고 외부로 확대시키지 않는다. 다섯째, 근로자 전원은 생산성 향상에 노력한다. 여섯째, 노사는 그동안의 사태에 대하여 상호 유감으로 생각하며, 회사는 분규를 조장한 사원들을 인사조치한다.’

‘1항’과 ‘2항’은 그간의 문제를 바로잡고 민주노조의 활동을 계속 보장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내용이었다. 합의사항은 곧바로 이행되었고, 노조 탄압에 앞장섰던 회사 간부들이 인사조처되어 인천공장을 떠났다. 그리고 섬유본조에서도 이풍우가 쫓겨나고 후임으로 조사통계국장인 이광환이 내려왔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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