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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대의원대회서 만장일치로 지부장 당선 / 이총각

등록 2013-07-07 19:30수정 2013-07-08 09:53

1977년 4월4일 우여곡절 끝에 속개된 동일방직 민주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이총각은 만장일치로 새 지부장에 당선됐다. 연단에 오른 그는 당선 소감을 밝히려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왼쪽 사진), 대의원들의 목말을 타고 대회장 밖으로 나온 그를 조합원들은 헹가래와 함성으로 환영했다.(오른쪽 사진)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1977년 4월4일 우여곡절 끝에 속개된 동일방직 민주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이총각은 만장일치로 새 지부장에 당선됐다. 연단에 오른 그는 당선 소감을 밝히려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왼쪽 사진), 대의원들의 목말을 타고 대회장 밖으로 나온 그를 조합원들은 헹가래와 함성으로 환영했다.(오른쪽 사진)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7
1977년 3월31일 전날 휴회된 동일방직 민주노조 대의원대회는 남자 대의원들의 폭력 행사로 또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충돌을 예상하고 파견된 경찰들이 있었지만 팔짱을 낀 채 남자 조합원들의 폭력을 보고만 있었다. 그 와중에 지난해 7월 ‘알몸시위’ 때 충격으로 몇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이순옥이 남자 대의원이 던진 재떨이에 이마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차분하고 순한 순옥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이어서 싸울 상황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주길자, 이영숙 전임 지부장 때 노조 간부들은 거의 대부분 퇴사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렇게 열성적인 조합원들이 있어서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와해될 수가 없었다.

4월4일 오후 3시 또다시 대의원대회가 속개되었다. 회사는 갑자기 남자 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을 새벽 6시로 바꿔 오후 2시에 퇴근하도록 조처했다. 이는 오후 3시에 열릴 대회에 동원해 방해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남자 대의원들이 고춧가루와 인분을 들고 대회장인 기숙사 강당으로 들어갔고 퇴근한 남자 조합원들도 줄지어 몰려들었다. 이제 곧 회의장은 그들의 난동으로 쑥대밭이 될 판이었다.

한편 공장 현장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여성 조합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이제 지부장을 선출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면 회사를 상대로 제대로 된 민주노조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 쪽의 사주를 받은 남자 조합원들의 횡포로 노동자끼리 싸우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니 너무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번만큼은 무사히 대회를 치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조합원들의 소망은 간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3시가 되자 와인다과에서부터 조합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기어이 무슨 일이 터진 것이었다.

대회장의 소식을 들은 집행부 지지 조합원들이 일손을 멈추고 쏟아져 나오자 당황한 건 회사 쪽이었다. 원래 기계를 멈추면 안 되는 작업들이 있는데다 또다시 사회적 지탄을 받을 사건이 터지는 것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남자 조합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류하기 시작했고, 결국 남자 조합원들과 회사 쪽의 사주를 받은 대의원들이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노조 사무실 앞에는 수백명의 여성 조합원들이 앉아서 투쟁가를 부르며 대회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 밖에서도 다른 회사 노동자들과 단체 사람들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손을 흔들며 응원해줘서 한층 고무되고 있었다. 그때 기숙사 강당에서 문명순과 박복례가 풀이 죽어 걸어 나왔고, 몇몇 남자들도 고개를 숙인 채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농성을 하고 있던 조합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배신자는 물러가라!”

반조직파들이 퇴장하자 대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총각 후보는 남아 있던 대의원 31명 전원의 지지를 받고 드디어 새 지부장에 선출되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자 밖으로도 소식이 전달되었는지 조합원들의 함성이 공장을 뒤흔들었다.

이총각은 만감이 교차했다. 세례명 루시아를 받고 지오세(가톨릭노동청년회) 투사로 살면서 노동조합을 알게 되었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혹독한 세상과 맞서 싸워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불의는 너무도 강해 그와 맞서는 건 혼자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끝내 이기리라는 희망을 버려본 적이 없는 것은 늘 든든하게 노조를 받쳐주는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지부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고 보니 그를 격려하고 지지했던 조합원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에 가슴이 벅찼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던 그 순간 눈물이 먼저 흘러나와 말문을 막았다. 그때 대의원 박선자가 일어나 울먹이며 ‘선구자’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들 따라 불러 밖에 있는 조합원들까지 함께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노래는 통곡이 되고 함성이 되었다. 대회장에서 대의원들이 새 지부장을 목말을 태워 나오자 조합원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환호성을 올리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총각은 그날을 떠올리면 조합원들이 헹가래를 쳐서 하늘을 날았던 기억과 ‘우리 승리하리라’를 목청껏 부르던 조합원들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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