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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노동절 기습시위 / 이총각

등록 2013-07-24 19:19

1978년 3월10일 이총각과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똥물 투척 사건’을 널리 알리고자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장에서 기습시위를 시도했다. 사진은 당시 얼굴이 알려진 간부들을 대신해 기념식장 시위를 주도한 최명희를 비롯한 76명의 여성 조합원들이 펼침막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78년 3월10일 이총각과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똥물 투척 사건’을 널리 알리고자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장에서 기습시위를 시도했다. 사진은 당시 얼굴이 알려진 간부들을 대신해 기념식장 시위를 주도한 최명희를 비롯한 76명의 여성 조합원들이 펼침막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50
1978년 3월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 실황이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총각과 노조 집행간부들은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활동가들과 함께 노량진 지오세 본부에서 숨죽여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라디오는 이철순이 함세웅 신부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빌려온 것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정동호 노총 위원장이 기념사를 읽는 도중에 동일방직 민주노조 조합원 76명의 행동이 개시될 것이었다. 모두들 긴장해 말없이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시각, 행사장에 앉아 있던 이총각 집행부의 부녀부장 최명희는 정동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곳곳에 퍼져 있는 조합원 75명이 그가 구호를 외칠 때만을 기다리며 초긴장 상태에 있을 것이었다. 그 역시 온몸이 덜덜 떨리며 다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정동호가 “셋째…”라고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최명희는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외쳤다.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귀에는 모기 소리만큼 작게 들렸다. 순간 여기저기서 조합원들의 천둥소리 같은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똥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김영태는 물러가라!” 조합원들은 가지고 있던 유인물을 여기저기 뿌리고 펼침막을 펼쳐 높이 들었다.

총각을 비롯한 일행들도 라디오 앞에서 모두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됐어! 드디어 해냈어!”

생중계되던 텔레비전 화면에도 그 장면이 그대로 잡혔다. 하지만 순식간이었고 라디오에서는 지지거리는 소리가 2분간 계속됐다. 이후 2분씩 3차례나 생방송이 중단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동안 행사장의 동일방직 조합원들은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렸다. 입장할 때 받은 빵과 우유도 함께 연단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들의 결의에 찬 외침은 길게 가지 못했다. 곧 경찰과 행동대원들이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조합원들을 두들겨 패고 머리를 잡아채며 입을 틀어막고 질질 끌고 나갔다. 그렇게 10여분 동안의 소동 끝에 31명의 조합원이 서울 중부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곳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다시 인천 동부경찰서로 인계되어 조사를 받은 뒤에야 그 가운데 28명만 풀려났다. 하지만 최명희·김연심·김민심은 이튿날 열린 즉결재판에서 25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았고, 지부장인 이총각은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령이 내려졌다.

그날 총각은 사전에 계획한 대로 노동절 행사장에서 연행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명동성당 저녁미사에 참석한 다음 사제관 3층으로 자리를 옮겨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명동성당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제관 창문 밖에는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김영태는 물러가라” 등을 적은 펼침막이 펄럭였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농성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담요·치약·칫솔·속옷·수건·생리대 등을 전해주기도 했다.

농성 조합원들은 추기경에게 도시산업선교회와 지오세가 과연 공산당을 이롭게 하는 집단인지를 가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다음날인 3월11일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보좌신부와 함께 농성장을 방문했다. 총각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그간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래? 너희들이 참말로 똥을 뒤집어썼단 말이냐? 믿어지지 않는데….”

정명자가 나서서 2월21일에 있었던 똥물 만행 사건을 울먹이며 얘기했고 회사와 반대파 세력의 탄압 명분은 산선과 지오세가 빨갱이라는 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추기경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것은 종교탄압”이라고 분개하면서 지오세 회원들과 특히 루시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총각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동일방직 노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한편 3월12일 밤에는 인천 답동성당에서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절 기념 기도회가 열렸다. 조화순 목사가 나와 동일방직 사건을 보고하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동일방직 조합원 50여명은 동일방직 노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하기로 하고 사제관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사건의 확대를 우려한 관계기관에서 김몽은 명동성당 주임신부를 통해 총각에 대한 수배령을 해제하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며 협상을 제안해왔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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