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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박정희의 죽음, 복직 기대감에 부풀다 / 이총각

등록 2013-09-02 19:43수정 2013-09-02 23:49

1979년 10월27일 마침 서울에서 묵고 있던 이총각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소식에 충격과 함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날 새벽 4시 비상계엄령 선포에 따라 해고자들의 집에는 형사들이 들이닥쳤고 중앙청 앞에는 계엄군의 탱크가 진주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79년 10월27일 마침 서울에서 묵고 있던 이총각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소식에 충격과 함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날 새벽 4시 비상계엄령 선포에 따라 해고자들의 집에는 형사들이 들이닥쳤고 중앙청 앞에는 계엄군의 탱크가 진주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78
1979년 10월27일 새벽 이총각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루시아, 일어나 봐.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대요.” 잠이 덜 깬 총각은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매님 집에 형사들이 들이닥쳐서 이총각을 찾는다고 연락이 왔어요. 당분간 몸을 피해야겠어요.”

총각은 전날 서울 명동에 있는 전진상교육관에서 열린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건물 안 기숙사에서 하루를 묵기로 하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비몽사몽 중에 들은 박정희의 죽음은 번개라도 맞은 듯 충격적이었다. “왜? 누가?”라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곧바로 동일방직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몇명의 집에도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무슨 죽을 죄를 졌다고 새벽부터 난리를 치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그들도 계엄령이 선포되어 요주의 인물들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었다. 혹시 뭔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튼 라디오에서는 장송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10월26일 저녁 7시50분께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숨졌다는 믿기 힘든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동일방직 해고자뿐만 아니라 뉴스를 듣고 있던 형사들도 놀라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79년 내내 유신정권의 발악으로 수많은 인사들이 감옥에 가고 학생, 노동자 할 것 없이 무자비한 경찰들의 폭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솟구쳐 오르는 민중들의 저항은 겉으론 강한 척하나 속은 자중지란으로 썩어가고 있던 유신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고은 시인은 ‘와이에이치(YH) 김경숙’이라는 시에서 70년대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1970년 전태일이 죽었다/ 1979년 YH 김경숙이/ 마포 신민당사 4층 농성장에서 떨어져 죽었다/ 죽음으로 열고/ 죽음으로 닫혔다/ 김경숙의 무덤 뒤에 박정희의 무덤이 있다/ 가봐라’

18년 5개월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가 죽자,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있었던 민주화 세력들은 감출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혀 희망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일방직 해고자들 역시 복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고, 그동안 연락이 없던 해고자들의 전화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다.

물론 박정희의 죽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었다. 특히 10월20일 제9대 노총위원장에 당선되었던 섬유노동조합 위원장 김영태가 딱 그 경우였다. 민주노조들을 쓰러뜨리는 데 앞장섰던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의 승승장구는 모든 민주노조 세력들을 암흑 같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의 성공을 단단히 받치고 있던 권력이 무너지자 아마도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지옥을 경험했을 것이다. 소문에는 박정희의 빈소에 찾아간 그가 구두를 벗어 들고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아이고오, 각하, 청천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게 웬일이십니까? 제가 왔습니다. 영태가 왔습니다”라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복직투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총각, 석정남, 안순애, 최연봉, 문현란, 김영순, 김용자, 박양순, 정명자 등은 12월22일 섬유노조회관에서 열린 79년 마지막 중앙위원 회의에 당당히 참석했다. 그러나 마땅히 참석해야 할 의장인 김영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문불출하며 지내다 외출 때에는 변장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날은 의무금 문제로 본조와 투쟁 중이던 원풍모방, 반도상사 등의 노조 간부들도 회의에 참석했고, 방용석 원풍노조 지부장은 신상발언을 통해 의무금 지원을 거부한 이유와 근거를 묻고, 와이에이치노조 투쟁과 동일방직 해고자 문제에 대한 본조의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그 무렵 앞서 10월에 있었던 노총위원장 선거 때 김영태가 서울 경북여관 308호에서 1500만원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돈 중에는 노조 파괴로 문제를 일으켰던 국제방직 그룹의 백만원짜리 수표 2장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김영태가 기업주들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았음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김영태와 함께 민주노조를 탄압하던 중앙위원들은 방 위원장과 해고자들의 추궁에 우물쭈물하거나, ‘앞으로 올바른 노동운동을 위해 섬유노조가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며 갑자기 투사로 변신까지 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였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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