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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YWCA 위장 결혼식’에 내란음모죄 적용 / 이총각

등록 2013-09-03 19:04수정 2013-09-03 22:23

1979년 11월24일 이른바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 결혼식’ 현장에 참석했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민주인사들은 유신독재 때보다 더 혹독한 신군부세력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사진은 결혼식 주례 역을 맡았던 함석헌 선생이 80년 1월15일 첫 선거공판장에 출두하는 모습.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79년 11월24일 이른바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 결혼식’ 현장에 참석했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민주인사들은 유신독재 때보다 더 혹독한 신군부세력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사진은 결혼식 주례 역을 맡았던 함석헌 선생이 80년 1월15일 첫 선거공판장에 출두하는 모습.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79
1979년 11월24일 이른바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위장 결혼식 사건’은 민주세력이 독재자 박정희가 죽고 난 뒤 처음 모인 집회였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규하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자, 이는 유신세력들이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음모라고 판단해 비밀리에 집회를 계획한 것이었다.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7~8명 역시 비밀리에 연락을 받고 행사에 참석했다. 집회라는 얘기를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그냥 단순한 결혼식은 아닐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둘러보니 원풍모방 조합원을 비롯해 많은 노동자들이 와 있었다. 다만 이총각은 ‘10·26’ 이후 내내 감시를 받아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터여서 참석할 수 없었다.

이날 오후 5시30분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 강당으로 500여명의 결혼식 하객들이 빼곡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신랑은 홍성엽(연세대 사학과 복학생), 신부는 윤정민(그해 6월 작고한 민주회복국민회의 초대 상임대표위원 윤형중 신부의 성에 ‘민주주의 정부’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가상의 여성)이었다. 홍씨는 실제로 친지들에게 청첩장을 돌렸고, 어머니(심혜수·1990년 작고)와 여동생까지 설득해 결혼식에 참석하게 했다. 대회장 겸 주례는 함석헌 선생이었다.

사회자인 기독청년협의회(EYC) 회장 김정택이 결혼식 시작을 알리자 신랑 홍성엽이 입장했고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유인물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예상대로 신부의 입장은 없었고 준비위원장 박종태(전 공화당 국회의원)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신군부세력의 계엄체제 때문에 위장결혼식을 하게 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보궐선거를 반대한다.”

이어 참석자들은 김정택의 선창으로 ‘통대선출 반대, 거국민주내각 구성 촉구’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열기를 더해갔다.

바로 그때,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대기하던 계엄군이 난입해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엄청난 폭력을 휘두르며 연행하고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뜻밖의 상황에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머리 위로 날아오는 의자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폭력적인 경찰로부터 수없이 당해봤지만 그날의 상황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98명이 연행되었고, 밖으로 빠져나온 참석자들이 코스모스백화점 앞에 모여 “유신 철폐”, “통대선거 반대” 등을 외치며 조흥은행 본점까지 거리시위를 벌이다 다시 44명이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함석헌·윤보선·백기완·박종태·양순직·홍성엽 등 18명이 불구속 혹은 구속되었고, 67명이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겐 포고령법 위반(불법 집회 및 시위)이 적용되었다가 바로 다음날 내란음모죄로 변경되었다. 수사과정에서는 참혹한 구타와 고문이 자행되었고 머리털이며 손톱이 다 뽑히는 등 대부분이 평생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여전히 굳건히 살아남아 있던 유신세력들이 또다시 학생, 종교계, 교수, 노동자들을 잡아 가두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12월8일 ‘긴급조치 8호’가 해제된 이후에야 관련법으로 구속됐던 학생, 언론인, 종교인 등이 석방되었고, 8월17일 구속 수감된 와이에이치(YH)무역 노동자들도 보석으로 출감했다.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그동안 학도호국단 체제로 운영되던 학생회를 자주적 총학생회로 바꾸고 따뜻한 봄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아직 박정희 이후의 정권을 감당할 준비가 부족했고, 정치권의 중심에 있었던 ‘3김씨’는 사분오열하며 단결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은 군부도 마찬가지여서 박정희 사후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해 군 내부의 개혁을 단행하자 신군부세력이 불만을 품고 군부 장악에 나섰다. 12월12일 서울시민들은 난데없는 총격전 소리와 교통통제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음날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전방부대 사단장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군부 내 ‘하나회’ 조직은 국방부와 중앙청을 점령하고 실권을 장악했다. 이렇게 권력을 탈취하고 자신감에 넘친 신군부세력은 몇달 뒤 일어날 ‘5·18 광주민중항쟁’의 비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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