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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무기한 단식농성 / 이총각

등록 2013-09-08 19:24수정 2013-09-08 21:06

1980년 4월25일부터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이른바 ‘서울의 봄’을 맞았는데도 지지부진한 복직 투쟁을 매듭짓고자 한국노총 위원장실로 들어가 장기 농성을 시작했다. 사진은 78년 2월 해고 이후 결혼한 해고자가 아이와 함께 농성에 동참한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25년사> 중에서
1980년 4월25일부터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이른바 ‘서울의 봄’을 맞았는데도 지지부진한 복직 투쟁을 매듭짓고자 한국노총 위원장실로 들어가 장기 농성을 시작했다. 사진은 78년 2월 해고 이후 결혼한 해고자가 아이와 함께 농성에 동참한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25년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82
1980년 4월25일 오후 2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27명은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위원장실을 점거한 뒤 5가지 요구사항을 내걸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첫째, 동일방직 해고자 124명을 원상복귀시켜라. 둘째, 구속된 정명자 동지를 즉각 석방시켜라. 셋째,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추진하다 구속된 서경석 총무를 즉각 석방시켜라. 넷째, 노동3권 보장하라. 다섯째, 김영태는 물러가라!’

그즈음 ‘민주화의 봄’은 울긋불긋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온 나라를 민중들의 함성으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동일방직 해고자들 역시 세상이 바뀌었으니 교회나 성당을 벗어나 좀더 직접적으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곳에서 농성을 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이 한국노총 위원장실이었다. ‘10·26’ 이후 노총 간부들의 태도는 비굴할 정도로 달라지긴 했지만, 농성에 들어간 해고노동자들에게 쌀쌀맞게 구는 건 여전했다. 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강동례가 병원에 입원했고 단식을 풀기로 결정한 4월27일 밤 이후 김용자가 전신마비를 일으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어쩌면 긴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쓰러지는 사람까지 생기자, 해고자들은 식사를 하면서 투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동일방직 해고자들이 농성 투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던 동료들도 찾아오고, 그중에는 결혼해 두살배기 아이를 업고 온 해고자도 있었다. 또 각계로부터 해고자들을 격려하는 뜻에서 농성에 필요한 물품들이 답지했고, 먹을 것을 들고 오기도 해서 식사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특히 투쟁 현장마다 100명, 200명씩 조합원을 동원해 연대투쟁을 진행하던 원풍모방 노동조합은 회사 식당에서 밥, 국, 김치를 각각 한 들통씩 준비해 하루도 빠짐없이 노총 현장으로 실어 날랐다.

4월26일 오전, 강원도 태백의 사북탄광 상황을 둘러보고 온 노총위원장 직무대리 정한주는 동일방직 해고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일단 해산한 뒤 5월말까지 기다려주면 자신이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동안 당할 만큼 당해온 해고자들은 더는 속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농성이 계속 진행되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5월2일 관계자들과 다시 면담을 하게 됐다. 여기엔 이총각·김인숙 등을 비롯한 해고자 대표와 조승혁·김승훈·조화순 등 복직추진위원회 대표, 그리고 노동청장, 노동청 차장, 노정국장, 노총의 부녀국장, 동일방직의 윤아무개 전무와 어용노조 지부장 박복례 등이 참석했다.

이총각은 “우리의 요구는 78년 2월21일 이전으로의 원상복귀, 부당해고 이후의 임금 지불, 기타 문제에 대해 노총·노동청·회사와 협의 등이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윤 전무는 “부당해고가 아니라 취업규칙 위반으로 정당한 해고사유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이에 조승혁이 “노동자들이 124명이나 해고당한 것은 개인회사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다. 그러니까 노동청장이 나온 것이 아닌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김승훈이 “3월23일 명동성당 단식농성 해산 뒤 사장이 약속을 안 지켰다”고 주장하자 윤 전무는 “아니다. 조 목사가 들어가지 말라고 해서 회사에 안 들어간 거다”라고 부인했다. 어이없는 주장에 발끈한 김인숙이 “우리가 누가 들어가지 말라 하면 안 들어가고,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는 사람들인 줄 아느냐?”고 항의했고, 박복례는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전 집행부는 조합원의 처우 개선보다는 조직 강화에 더 힘을 썼다. 그리고 현재 조합원들은 해고자들이 다시 회사로 들어오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회사 쪽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대화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더니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에 전전긍긍하던 노총위원장은 좀더 기다려주면 소신껏 해결방안을 찾겠다고 약속을 했고, 해고자들은 농성을 계속해나가기로 했다. 분명한 해결책이 나온 건 아니었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경찰에 당하기만 했던 때에 비하면 진전이 된 거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세를 더해가는 학생, 노동자, 종교계, 민주단체 등의 시위와 농성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결국은 유신잔재 세력들을 끝내 이겨내리라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해고자들은 이제 다시 회사로 돌아가 예전처럼 일도 하고 노조 활동을 계속해나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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