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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동생 취업 막히자 경찰서장실 쳐들어가 / 이총각

등록 2013-09-12 19:28

1980년 5월18일 신군부의 비상계엄령과 동시에 수배자 신세가 된 이총각은 서울, 전북 익산, 강원도 원주 등지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3월 원주대교구 지학순 주교와 면담을 통해 결심을 굳히고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사진은 출두 직전 그가 머물렀던 천주교 원주대교구의 80년대 초반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 5월18일 신군부의 비상계엄령과 동시에 수배자 신세가 된 이총각은 서울, 전북 익산, 강원도 원주 등지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3월 원주대교구 지학순 주교와 면담을 통해 결심을 굳히고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사진은 출두 직전 그가 머물렀던 천주교 원주대교구의 80년대 초반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86
이총각이 수배생활을 했던 1980년 5월18일부터 10개월 동안은 가족들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다. 셋째 딸 걱정에 늘 선잠을 자야 했던 어머니는 여전히 대문 밖의 사소한 발자국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곤 했다. 문제는 형제들에게도 뻗치는 감시의 눈초리였다. 여동생 희복은 그 무렵 작은 목재소에서 경리를 보고 있었는데 형사들이 자꾸 찾아오는 바람에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회사로 옮길 수밖에 없었지만 형사들의 추적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더욱 미안한 것은 그가 도피생활을 하던 중에 희복이 결혼을 했지만, 평생 남을 결혼식 사진에 셋째 언니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든 거였다. 남동생 철하의 결혼식 때도 그는 감옥에 있어 참석을 못했다. 이런 그가 미울 수도 있을 텐데 희복이나 철하나 작은 일까지 늘 챙기며 마음 써주는 착한 동생들이다.

그런가 하면 철하는 중동 건설현장으로 취업해서 떠나려 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형사는 누나가 있는 곳을 대면 선처하겠노라 했단다. 총각은 동생 볼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한창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고 생계까지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총각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인천 동부경찰서로 쳐들어가 서장과 마주앉았다. 동석한 조아무개 정보과장은 갑자기 나타난 수배인물에 놀라서 안절부절못했다. 총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 동생이 벌어먹고 살겠다고 중동으로 간다는데 왜 비자를 안 내줍니까? 왜 식구들까지 못살게 구는 거예요? 그리고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직도 못해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왜 괴롭히는 거죠?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요?”

서장은 짐짓 모르는 척했다. “미스 리, 무슨 얘기냐? 자세히 좀 말해봐. 난 금시초문이야.” 총각은 서장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옆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서장 얼굴에 확 뿌려버렸다. “나, 올 때까지 왔어. 이제 너 죽고 나 죽고야!”

총각의 돌발행동에 정보과장이 손수건으로 서장을 닦아주느라고 법석을 떠는 사이에 총각은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 스스로도 놀랐을 정도로 배짱 있는 행동이었다. 그때 잡혔으면 다시 감옥살이를 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총각은 그래도 동생을 위해서 그 정도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부경찰서는 뒤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을 했던지 사흘 뒤에 비자를 내줬고 동생은 무사히 중동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2년 동안 땀 흘려 번 돈으로 용현동에 집을 사 드디어 경찰들에게 쫓겨 다니며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될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총각은 수배생활을 끝내기 전 원주에 있는 천주교 주교관에서 며칠을 묵었다. 그리고 이제 떠돌이생활을 마치고 돌아가야겠다는 판단을 하고 지학순 주교를 찾아가 그의 결심을 전했다.

“주교님, 이제 분위기도 좋아진 것 같고, 그만 인천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글쎄, 너 나가면 붙잡힐 텐데….”

총각은 굳은 결심을 하고 인천교구의 김병상 신부에게 전화를 했다. 김 신부는 함께 동부경찰서를 가자며 선뜻 나서주었다.

81년 3월13일 총각은 동부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스스로 수배생활을 마감했다. 김 신부는 총각에게 무릎을 꿇게 한 뒤 강복을 주고는 형사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고향이 같다며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정보과장은 갑자기 나타난 수배자 때문에 쩔쩔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총각은 그곳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은 뒤, 서울의 정보기관으로 보내져 열흘 정도 조사를 더 받고 무사히 귀가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총각이 돌아오자 누구보다 동일방직 해고 동지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동안에도 동일방직 복직투쟁위원회의 활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는 결혼도 하고 누구는 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계속해 나가는 등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복직투쟁위원회는 그해 4월 지부장의 귀환을 알리는 동지회보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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