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취업 현장을 다룬 책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정용일 기자
대학생 ㄱ(24)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인턴으로 두달간 일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작품 전시 업무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현실은 달랐다. 인턴 담당자도, 교육 프로그램도 없었다고 한다. 업무의 90% 이상은 청소와 설거지 등 잡일이었다. ㄱ씨는 “배우는 게 없어서 마치 자원봉사 하러 온 것같이 느껴졌다. 인턴 마치고 나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고 했다.
한 영화제 홍보팀에서 인턴 일을 했던 20대 여성 ㄴ씨도 홍보 업무를 거의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ㄴ씨는 “내 ‘사수’는 기획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홍보 업무를 잘 몰라서 물어봐도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ㄴ씨는 “월급이 70만원은 되는 줄 알고 인턴 일을 시작했는데 40만원만 줬다”고 했다.
28일 청년유니온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 대회’에서는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값싸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이들의 ‘울고 싶은 현실’이 쏟아졌다. 청년유니온이 ‘과도기 노동’이라고 부르는 노동 유형은 수습(시용)과 인턴(교육훈련생·현장실습생)이다. 수습은 최저임금과 퇴직금, 휴게시간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만, 잠시 교육받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인턴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업체들은 인턴 등으로 이름을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수습·시용과 동일한 일을 시킨다. 이상훈 노무사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인턴이라고 해도 해당 실습생이 회사를 위해 근로를 제공하고 사업주의 업무 지시를 계속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로 판단한다”고 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대학 등 교육과정에서 노동시장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과도기 노동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과도기 노동의 열악한 근로 조건에 처한 청년들에게 열정을 갖고 참고 견딜 것만 강요하지 말고, 교육과 훈련을 지원해 노동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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