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강행하겠다며 9일 내세운 근거는 ‘공감대’다.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공감대를 이뤘다며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임금피크제 등 3대 현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관이 공감대를 이뤘다는 내용은 한국노총이 노사정 논의 결렬 선언 때 강조한 ‘5대 수용 불가 사항’이다. 기자들이 노동계의 예상되는 반발을 지적하자 이 장관은 “교감한 사항을 실천하는 데 (한국노총이) 반대 투쟁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 논의 과정의 진통을 예상한 질문에도 이 장관은 “노사정이 공감한 부분이라 상황이 달라졌다고 보고 있고 (국회가) 이 부분을 봐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이 장관은 스스로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고 인정한 ‘해고·취업규칙 요건 관련 가이드라인’도 사실상 그냥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래도 추진, 저래도 추진이라는 이 장관의 태도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요령부득이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논의가 애초 개별 쟁점별 합의가 아닌 일괄타결 방식으로 진행되다 결렬됐는데, 이 장관이 ‘부분 합의’나 ‘공감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태도다.
노사정 대화에 불참한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정부의 의도는 노사정위를 통해 사회적 합의라는 포장을 씌워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따른 사회적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아왔다. 정부가 노사정 논의를 ‘합의를 위해 최대한 애썼다’는 알리바이로 삼아 정책 추진을 강행하리라는 우려였다. 9일 이 장관의 기자회견은 노동계의 이런 ‘노사정 들러리론’이 기우나 과장이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그렇지 않아도 ‘노사정 대화’의 효용은 낮게 평가돼왔다. 10%를 오르내리는 낮은 노조조직률, 민주노총의 불참,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기를 꺼리는 재계, 친기업 성향의 정부 등 노사정의 낮은 대표성과 힘의 불균형, 상호 신뢰 부족 탓이다. 실제 지난 석달간 노사정 논의는 재계·정부·공익위원이 사실상 한편이 돼 노동계를 일방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게 중평이다.
노사정 대화의 실패만으로도 사회적 부담이 큰데, 노사정 대화를 ‘제논에 물대기’ 식으로 해석해 일방적 정책 추진에 활용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노-사-정 사이의 가뜩이나 취약한 신뢰의 기반을 훼손하고 국민의 불신의 키울 수밖에 없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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