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남의 한 단위농협에 다니던 유아무개씨는 해당 농협이 흡수합병되자, 희망퇴직 권고 대상자가 됐다. 당시 회사 쪽은 “희망퇴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여섯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할 수 없고, 거부하면 정리해고 하겠다”고 유씨를 압박했고, 유씨는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서를 냈다. 이후 유씨는 “회사의 강요로 인해 희망퇴직서를 냈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가 중노위의 판정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2007년 “어느 정도 강요 또는 강압적인 면이 있어 노동자들이 사직서를 내는 것이 마음속으로 바라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해 희망퇴직서를 낸 것으로 보인다”며 “사직서 제출이 진의(진짜 뜻)가 아닌 의사 표시라거나 강요·강박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록 일정 수준의 강요의 정황이 있다 하더라도 희망퇴직서에 스스로 사인했다면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합의에 따라 근로계약이 종료됐기 때문에 ‘해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노동자 본인이 희망퇴직서를 제출한 것이라면 ‘해고’로 볼 수 없고 (자발적인) ‘사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최근까지 법원의 주류적 태도다. 희망퇴직을 한 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며 부당해고 소송을 내도 법원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회사가 손모가지를 비틀어 희망퇴직서에 강제로 도장을 찍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강요·강박에 의한 희망퇴직서 제출이라는 것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는다”며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일반적인 ‘민사적 계약’ 관계와 다른데도 형식적으로 노동자가 근로계약 관계 종료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위로금을 받고 희망퇴직하거나 위로금을 받지 않고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희망퇴직과, 단순히 위로금을 받고 퇴직하기 위해 희망퇴직한 것은 형식적으로는 같지만, 이러한 결정까지의 사회·경제적 기초가 다르다”며 “희망퇴직서를 쓰는 상황뿐 아니라 희망퇴직서 작성 이전까지의 정황을 두루 살펴서 왜 사직원을 쓰게 됐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목적으로 이뤄진 사직이나 근로계약 합의해지는 노동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외형상으론 근로계약의 합의해지 모습을 보이더라도 사실상 ‘해고’로 보는 ‘의제해고’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에서는 ‘의제해고’가 인정될 경우 해당 기간 임금 등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최소한 노동자가 퇴직하기 전까지 부당한 괴롭힘 등으로 인해 희망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런 퇴직은 법적 효력이 없음을 명문화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윤종오 의원(무소속)이 ‘쉬운 해고 금지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7월 대표발의한 법안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문화하여 “퇴사를 유도하는 방편으로 대기발령·전환배치·교육훈련을 하는 행위를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윤 의원은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은 사실상 일상적 강제 해고”라며 “대기발령·전환배치 등 고압적인 퇴사 압박은 물론 인권유린적 일터 괴롭힘도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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