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과로사회] 공공부문 노동자 집담회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주 52시간 노동 관련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동시간 줄었지만 연장수당 깎여
퇴직금 손해볼까 7월 전 퇴사 속출
“일 더 달라” 17시간 연달아 근무도 버스업계는 노사정 합의로 인력 충원 전까지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지역별로 순차 도입하기로 했다. 아직 도입되지 않은 곳이 도입된 곳보다 많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곳은 전체 노동시간이 다소 줄었지만 임금 감소를 보전하지 못해 오히려 소수의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리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격일 근무를 한 달 내내 하는 ‘만근’을 채우면 그 이후 추가근무수당을 가산하는데, 회사가 이를 더 올려주는 식으로 부족한 인력을 메우는 탓이다. 홍 실장은 “당장 이달부터 연장근로수당이 삭감된 터라 퇴직금을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예 퇴사하는 이들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공항 보안검색 12조8교대로 쪼개
6시반~밤 8시반 사흘내리 ‘올데이’
집에서 잠만 잔 뒤 깨어있는 내내 일
“근무중 화장실 가기도 힘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뒤 가장 먼저 찾아갔던 인천국제공항도 마찬가지였다. 승객보안검색일을 하는 이들은 최근 인력 충원 없이 ‘12조8교대’로 교대제를 바꿨는데, 오전 6시반에 시작해 밤 8시반까지 일 하는 ‘올데이’ 근무를 사흘 연속해야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출퇴근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공항 근무의 특성상 이런 경우 집에서 잠만 잔 뒤 깨어있는 내내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용쾌 인천공항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정책국장은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니 용역업체 간부들이 직원들과 1대 1로 동의서를 쓰기도 했다. 어떤 여직원은 이런 근무시간 내내 화장실도 못 갔다고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주 52시간 노동 관련 집담회 참석자들. 이정아 기자
교사 충원 없어 서류로만 맞춰
낮잠 시간·특활 시간 쉬라는데…
“그나마도 싸워서 얻어낸것” 어린이집의 경우 규모가 작아,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해당하는 주 최대 52시간제가 적용되진 않는다. 다만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8시간 이상인 근무시간 중간 1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육교사 이선희씨는 “대부분 원장들이 서류상으로 휴게시간을 줬다고 짜맞추기만 한다. 우리 어린이집의 경우 1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써도 된다는 고용부 유권해석을 따라 아이들 없이 20분 쉬고 낮잠 때 40분 쉬는 걸로 했지만, 그나마도 싸워서 얻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항보안공사는 이직 행렬
기본급 최저임금인데 수당마저 삭감
충원계획 세웠지만 충원 안돼
“밀입국 순찰 돌다 부상사고 나기도” 인력 충원 계획을 세웠지만 충원 자체가 쉽지 않은 사업장도 있다. 인천항보안공사의 경우 3조2교대를 4조3교대로 바꾸면서 56명을 더 충원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회사 뜻대로 충원이 되지 않고 있다. 오정진 인천항보안공사지부 지부장은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인데다 신규채용을 계약직으로 해놓으니 충원이 되지 않는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도 임금이 20%가 깎여나가니 그냥 그만둬버리고, 새로 인력 충원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사용자인 정부가 고통 분담해야” 과로 노동은 위험을 부른다. 더군다나 이들이 일하는 곳은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익사업장들이다. 공익사업장일수록,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일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정진 지부장은 “얼마 전 야간에 항만 부두 내에서 배회하는 사람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감지됐는데, 이미 15시간가량 근무한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를 적발하러 이동하다 사고를 당했다. 한쪽 다리 인대가 끊어지고 무릎도 못 쓰게 됐다. 그 배회하던 이가 밀입국하려던 범죄자였다면 어땠을까”라고 말했다. ‘시민의 발’ 버스의 위험도 방치돼 있다. 버스 기사들은 일이 생겨 갑자기 쉬어야 할 때 대리근무자를 자기 돈으로 스스로 구해야 한다. 홍현진 실장은 “격일로 일하는 상황에서 급하게 쉬어야 한다면 바로 전날 일한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 밖에 없다. 전날 17시간 일했던 사람이 또다시 17시간을 일하는 것이다. 20만원씩 현금을 주고받으면서”라고 말했다. 기사들이 금전으로 보장받는 과로 노동의 유혹에 노출되는 동안 시민의 안전은 실종된다.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으로 초과근로와 함께 임금이 줄자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는 게 홍 실장의 설명이다. 이들에게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으로 나아진 점이 없는지를 물었다. 아무도 답이 없었다. 이들은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정부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정진 지부장은 “우린 모기업인 항만공사가 예산을 내려주는 구조인데 52시간이 시행되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해양수산부에 가서 얘기하면 예산이 없으니 모기업에 가서 얘기하라 하고, 쳇바퀴를 돌았다”고 말했다. 김학일 국장은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건 일·가정을 양립하고 새로 인력을 충원해 청년실업도 완화하자 이런 취지 아닌가. 우리는 초과근로의 기회를 양보하고 실질임금 하락도 감수하겠다는데, 정부가 전혀 부담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사용자로서, 일정 부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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