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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영양교사, 하루 11시간씩 근무…“생리가 사라졌어요”

등록 2018-07-26 05:01수정 2018-07-26 10:44

[탈출! 과로사회]
하루 2~3식 학교, 과로노동 일상화
주 52시간 도입 전까진 주말도 근무
대부분 학교에 영양교사는 ‘단 한명’
근로기준법 적용 안되는 교육공무원
“아파도 병원 갈 시간조차 없어요”
경상도의 한 중학교 영양교사로 일하는 박성근씨(가명)의 일과. 그는 혼자 학생들의 점심·저녁식사 관리를 맡고 있다.
경상도의 한 중학교 영양교사로 일하는 박성근씨(가명)의 일과. 그는 혼자 학생들의 점심·저녁식사 관리를 맡고 있다.
“6월 초까지는 주 63시간 근무했더라고요“

수도권의 한 기숙형 고교에서 영양교사를 맡고 있는 최혜정(가명·38)씨는 하루 평균 11시간 일한다. 최씨가 일하는 학교에서는 재학생한테 아침·점심·저녁 세 끼를 모두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말에도 출근해 8시간 남짓 근무했다.

아침 식사를 챙기려면 새벽부터 학교에 나와야 했다. 보조영양사와 한 주씩 번갈아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했다. 새벽 출근이 없는 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다. ‘칼퇴’의 기억은 드물었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에도 ‘배식지도’에 나서야 했기에, 온전히 쉬지 못했다.

최씨의 일과는 새벽 6시(혹은 오전 9시) 출근과 함께 시작된다. 그가 관리하는 식사는 한끼에 600인분씩, 하루 1800인분이다. 한끼에 쓰이는 고기 양만 130㎏에 이른다. 유통기한과 신선도 등 식자재 검수에 꼬박 2시간이 걸린다. 검수가 끝나면 학생들이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배식지도와 잔반 확인 업무가 이어진다.

점심식사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 오전 11시30분쯤 조리된 음식의 온도 및 염도를 확인하고 학생들이 도착하기 전 20분 동안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다. 학생한테 제공된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학교 누리집에 올리는 일도 잊으면 안 된다. 오후 1시30분께 식사가 끝나면 식재료 재고를 파악하는 등 서류 업무를 시작한다. 틈틈이 다음 달 식단도 짜야 한다. 한달치 식단은 630개에 이른다. 3시30분께 석식 준비가 시작된다.

‘휴게시간’을 안내받은 적도, 쉰 적도 없다. 그런데도 학교는 휴게시간이라며 하루 1시간을 근무시간에서 뺐다. 초과근무에 따른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씨는 “평일 3시간, 주말에 8시간씩 한달 초과근무만 90시간이 넘는다”며 “이런 현실과 무관하게 행정실에선 초과근무 57시간을 넘기지 않게 기록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초과근무 수당이 월 55만원에 그치는 이유다.

그나마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며, 주 5일 근무는 가능해졌다. 최씨와 함께 일하는 조리사한테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 급식을 위탁업체에 맡긴 덕분에 근무시간이 줄었는데도, 여전히 최씨는 주 55시간 남짓 일해야 한다.

지난 1일 30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되기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계없이, 최씨가 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1차적 이유는 그가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영양교사 등 교육공무원한테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공무원 복무규정 등을 보면 주 40시간 근무가 원칙이고, 초과근무는 월 기준으로 57시간을 넘지 못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규정이 쉽게 무너졌다.

지난 몇 개월의 영양교사 생활은 최씨의 몸을 망가뜨렸다. “3월에 영양교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무월경 상태에요. 최근까지 주말에도 일을 한 탓에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 병원에 가봐야죠”

보조영양사가 있어 교대가 가능한 최씨는 영양교사 가운데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경상도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영양교사 박성근(52·가명)씨는 혼자 학생들의 점심·저녁을 책임지고 있다. 박씨는 오전 7시50분께 출근해 8시30분에 퇴근한다. 초과근무를 제대로 신청하지 않은 건 이미 오래다. 박씨는 “오전에 교장선생님께 결제를 받아야 초과근무가 인정되는데 매일 어떻게 챙기겠냐”며 “그저 사명감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영양교사 일을 한 27년 가운데 13년을 2~3식 학교에서 근무했다. 어깨와 팔목, 눈은 망가진 지 오래다. 7년 전 건강검진에선 갑상선암이 발견돼 수술을 하기도 했다.

최씨와 박씨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학교 영양교사들의 초과근무 실태는 심각하다. 2017년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함선옥 교수 등이 연구한 ‘영양교사의 과업량, 직무 긴장·갈등이 직무 만족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보면, 하루 3식을 제공하는 중·고등학교 영양교사는 일주일 평균 73시간을 근무하고, 2식은 61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양교사들은 인력충원을 통해 2~3교대가 가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영양교사들의 초과근무 실태에 대해 알고 있지만, 교육부의 교원수급 계획에 맞물려 있어 교육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학교급식법 개정 등을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학교급식법 7조는 ‘학교급식을 위한 시설과 설비를 갖춘 학교는 영양교사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2명 이상을 둔다’ 등으로 강화하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학교에 9~14시간씩 묶어두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주미화 경기교육희망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영양교사의 과도한 업무량을 해소하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두끼, 세끼를 모두 먹으며 입시에 매달려야 하는 교육제도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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