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외식업체, 요리사, 셰프, 주방장. 게티이미지뱅크
“새벽같이 출근해 공관장 출근 전 아침식사 준비와 상차림, 식사 끝나면 설거지, 관저 요리사 업무 진행, 그 후 공관장 퇴근 뒤 저녁식사 준비와 상차림, 식사 끝나기를 기다렸다 설거지. 이렇게 하루 13시간 이상 근무합니다. 주 6일 근무는 보통이고, 공휴일과 명절 등에도 공관장의 일상식사 때문에 출근해야 합니다. 세계에 한식을 알리고 싶고, 좋은 경험도 해보고 싶어 관저 요리사가 됐는데, 실상은 공관장의 하우스키퍼로 고용된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한 재외 공관에서 관저 요리사로 근무하는 ㅇ씨는 이렇게 말했다. “1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비용도 지원받을 수 없어 그만둘 수도 없다”는 그는 자괴감으로 가득했다.
공관장과 그 가족의 일상식, 즉 대사 가족의 사적인 식사 준비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 관저 요리사 처우가 ‘관노비’나 다를 바 없다는 폭로가 나왔고, 2017년 정부는 ‘관저 요리사 운영지침’을 개정해 일상식을 관저 요리사 업무에서 삭제했다. 다만 공관장과 요리사가 합의할 경우엔 급여와는 별도의 ‘적정한’ 보수를 받고 일상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지침엔 ‘함정’이 있었다. 일상식과 관련한 근무시간의 제한이 없다보니, ㅇ씨처럼 초과근무는 일상이 돼 버린 것이다. 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조 재외공관행정직지부(노조)가 밝힌 사례를 보면, 한 요리사는 지난해 10월 초과근무 시간이 112.5시간에 이르렀다.
세계 각지의 관저 요리사는 150여명인데, 외교부 직원이 아니라 재외 공관에서 따로 채용한다. 일상식 제공이 공관장과 요리사의 ‘합의’에 따른 사항이라 해도,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을’인 관저 요리사 처지에서 공관장의 일상식 제공 요구를 거부하긴 쉽지 않다. 계약 성사와 연장이라는 ‘목줄’을 공관장이 쥐고 있어서다.
일상식의 대가인 보수는 대부분 재외공관에서 200~300달러(23만7천~35만5천원) 선으로 ‘평준화’돼 있다. 노조 쪽은 최저임금법 위반이라고 본다. 일상식 제공으로 하루에 3시간, 한 달에 20일 일했다고 가정해도 최저임금 기준으로 50만1천원(주휴수당 제외)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저 요리사 운영지침엔 표준화된 일상식 제공 보수 규정이 없다.
외교부와 단체협상 중인 노조는 일상식 제공 업무를 하루 2~3시간으로 제한하고, 시간외 수당도 지급하라고 요구 중이다. 일상식 외에도 잦은 공관 행사 등으로 초과근무가 월 70~80시간에 이른다며 현재의 포괄임금제 폐지도 촉구한다. 행정직원처럼 관저 요리사도 근무시간을 오전 9시~오후 6시로 정하고, 그 이외 업무는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외교부 쪽은 “일상식은 공관장과 요리사가 사적으로 계약하는 거라 외교부에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관저 요리사 운영지침은 당시 처우 개선 요구를 반영해 바꿨지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개선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노조의 요구사항 수용 여부 등은 단체협상이 진행 중이라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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