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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 지 석달 된 스물넷 청년은 그날 야간근무조였다. 밤 10시40분께,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석탄운반시설을 혼자 점검하던 그는 밀폐함 점검구 상태를 살피려고 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안쪽을 작업용 랜턴도 없이 휴대전화 플래시로 비춰 보던 청년을,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가 집어삼켰다. 4시간가량 지난 이튿날 새벽 3시23분께 다른 근무자들이 그를 발견했다. 몸이, 머리와 몸통, 둘로 찢긴 채였다. 청년의 이름은 김용균. 한국서부발전의 도급(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1년 전 오늘, 김용균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숙제를 남긴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균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이익보다 중시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2월18일 유가족 면담)고 응답했다. 하지만 ‘김용균법’으로 불리며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내년 1월16일 시행)은 그의 어머니 김미숙씨조차도 “(개정된 법으로는) 우리 아들을 살릴 수 없는데 왜 ‘김용균법’이라고 부르냐”고 한다. 산안법 적용 대상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되고,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도 일부 강화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 작업을 도급업체에 떠넘기는 것에 큰 제약이 없고, 사고가 나도 원청업체가 져야 할 책임은 가볍다. 그나마도 개정을 앞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은 법보다 더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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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이후, 김용균 법은

△2018년 12월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반시설 점검 중 김용균 사망
△12월17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구성
△12월27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일명 ‘김용균법’) 국회 통과
2019년 1월16일 고용노동부, 태안화력발전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1029건 적발. 형사 입건 및 과태료 부과
△2월5일 당정,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구성’ 계획 발표
△2월9일 김용균 장례식
△4월1일 당정 발표에 따른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 출범
△4월22일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개정안 입법예고
△8월19일 김용균 특조위, 진상조사 결과와 권고안 22개 발표
△10월26일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출범
△11월5일 국가인권위원회, 개정 산안법 미흡하다며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 권고
△11월11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서울 광화문광장에 김용균 분향소 설치
△12월7일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촛불집회)

김용균이 떠나고 법이 바뀌고 하위 법령이 후퇴한 지난 1년 사이, 또 수백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겨레>가 9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김용균이 숨진 다음날인 지난해 12월11일부터 올해 10월30일까지 모두 523명이 작업장 사고로 숨졌다. 10월30일은 집계할 수 있는 자료의 가장 최근일이며, 이 통계엔 과로나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빠져 있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떨어지거나(221명, 42.3%), 어딘가에 끼이거나(70명, 13.4%), 깔리거나(43명, 8.2%), 부딪히거나(40명, 7.6%), 무언가에 맞아서(34명, 6.5%) 생명을 잃은, ‘원시적 재해’ 사망자다.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53.7%)은 건설업에서, 25%는 제조업에서 났다. 도급과 하도급이 만연한 업종이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개정 산안법이 도급을 금지한 것은 도금이나 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뿐이다. 그 밖의 ‘위험한 작업’을 도급하려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는 입법 예고한 하위 법령에서 그 대상을 ‘1% 이상의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으로 한정했다. 김용균이 했던 전기사업 설비의 운전·점검 업무를 비롯해, 노동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도급 금지 대상도, 승인 대상도 아니다. 박세민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도급 금지나 승인은 그 작업이 너무 위험해 안전관리를 책임 있게 하라는 의미인데 개정 산안법은 도급을 거의 금지하지 않았고 하위 법령은 승인 대상을 더 좁힌 게 문제”라며 “‘김용균법’이라며 국민한테 착시 효과는 줬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불법시설에 추락방지책 없이
사전작업계획서 작성 없이
‘일용직’이라고 안전모도 없이
추락한 안전 ‘죽음의 일터화’
50억미만 공사 원청에 책임 못 물어

사람 죽어도 ‘작업 중지’ 한계
중대재해 시 작업중지 명령
‘해당’ ‘동일’한 작업으로 제한
전체 중지는 ‘불가피한 경우’만
작업중지 해제는 더 쉬워져
“사고 유발요인 너무 다양한데…”

성긴 제도의 ‘구멍’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듯 목숨들이 사라져간다. 9월20일 현대중공업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 박아무개(60)씨가 가스탱크 기압헤드(철판) 절단 작업을 하다 철판에 목이 끼인 채 목숨을 잃었다. 18t짜리 철판이 갑자기 떨어져 내려 90m 높이의 가스탱크 아래쪽에서 일하던 박씨를 덮쳤다. 당시 현장엔 철판이 꺾이거나 떨어지는 것을 막을 고정장치나 하부 받침대 같은 안전장치는 없었다. 엿새 뒤엔 대우조선해양 도급업체의 지아무개(35)씨가 선박블록 이송 작업의 신호수 업무를 하다 10t 무게의 블록에 깔려 숨졌다. ‘정석’대로라면 이송차량에 블록을 고정하고 신호수가 안전한 위치에 있는지 확인한 뒤, 블록과 연결된 크레인의 와이어 섀클(걸쇠)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 블록은 고정돼 있지 않은 상태였고, 급하게 걸쇠를 푸는 바람에 블록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지씨 쪽으로 넘어졌다. 원청은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따라 작성해야 하는, 추락·낙하·전도·협착 위험을 방지할 안전대책을 포함한 사전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하위 법령도 산업재해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대표적으로 건설공사의 경우, 원청이 산재 예방 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일 때만이다. ‘5대 안전사고 다발 건설기계’로 꼽히는 굴착기, 이동식 크레인, 덤프·화물트럭, 고소작업대, 지게차는 위험방지 조치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4월10일 경기도 수원의 한 공장 신축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25)씨가 5층 화물용 승강기와 벽면 사이 틈새로 떨어져 숨졌다. 승강기는 사용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운행됐고, 심지어는 문을 연 채 움직였다. 추락 방지 시설은 없었다. 원청도, 김씨가 속한 용역업체도 그가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안전모도, 안전화도 지급하지 않았다. 개정 산안법과 하위 법령이 시행돼도 ‘김태규’의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이 공사는 50억원 미만의 규모라 원청에 산재 예방 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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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도 ‘동일한 작업’만 중지

2월2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비정규직 이아무개(50)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관할인 노동부 천안지청은 사고가 난 컨베이어벨트 2개에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금속노조 충남지부는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천안지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7월22일 현대자동차그룹 납품업체인 경북 경주의 서진산업에선 비정규직 노동자(36)가 협력업체의 지게차에 치여 숨졌다. 이튿날 노동부 포항지청은 이 협력업체가 운행하는 지게차 사용 작업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다음날 회사는 다른 업체의 지게차를 투입해 작업을 계속했다. 9월27일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창고 천장 보수 작업을 하던 도급업체 노동자가 추락했다. 안전고리를 착용하고 있어 공중에 매달린 상태였지만 그는 끝내 숨졌다. 두개골이 함몰됐다. 회사는 천장 보수 작업 중에도 그 아래에서 움직이는 자동 크레인을 멈추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그가 이 크레인에 치여 숨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회사 쪽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반박한다. 사고 직후 노동부 서산출장소는 크레인 대신 천장 보수 작업만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는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유사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려는 조처다. 문제는 이렇게 작업을 중단시키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개정 산안법도 중대재해 시 작업중지 명령을 ‘해당 작업’과 ‘동일한 작업’으로 제한하고 있다. 사업장 전체의 전면 작업중지는 토사·구축물의 붕괴, 화재·폭발, 유해하거나 위험한 물질의 누출로 산재가 확산될 수 있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작업중지 해제는 지금보다 더 쉬워진다. 국무회의 의결을 앞둔 하위 법령은 입법예고안에 ‘회사 쪽이 해제를 신청하면 4일 안에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를 열어 해제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는데, 경영계의 압박으로 이 ‘4일’에 공휴일을 포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사고 유발 요인은 너무 다양한데, 개정법으로는 사람이 죽어도 사실상 전면 작업중지를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작업중지 해제 결정 기한에 공휴일까지 넣으면 제대로 현장 확인을 할 시간도 없어진다. 명절 전후로 나는 사고는 어떻게 할 거냐”고 지적했다.

김용균 이후, 비정규직 사고사망

 △1월4일 경기 화성 철강공장에서 전기 배선 업무를 하던 남아무개(27)씨 고소 작업대에 몸이 끼여 사망
△1월8일 경북 김천 화학물질 제조업체 폭발사고로 변아무개(27)씨 사망
△2월2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이아무개(50)씨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
△4월10일 경기 수원의 공장 신축 공사장에서 김태규(25)씨 화물용 승강기와 벽면 사이 틈새로 떨어져 사망
△5월3일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강원도 인제 배전공사 현장에서 송아무개(31)씨 8m 높이의 전봇대에서 떨어져 사망
△6월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탱크 수소가스 폭발사고로 배관 해체 작업 중이던 서아무개(61)씨 사망
△7월22일 경북 경주 서진산업에서 장아무개(36)씨 협력업체 지게차에 치여 사망
△7월31일 서울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빗물저류배수시설 점검하던 노동자 등 3명 사망
△8월14일 서희건설의 강원도 속초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15층 높이의 건설용 리프트가 추락 노동자 3명 사망
△9월20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가스탱크 기압헤드(철판) 절단 작업을 하던 박아무개(60)씨 철판에 목이 끼여 사망
△9월26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선박블록 이송작업 중이던 지아무개(35)씨 블록에 깔려 사망
△9월27일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자동창고 천장 보수작업을 하던 김아무개(50)씨 두개골 함몰로 사망. 노조는 작업 중이던 크레인에 치였다고 주장
△10월4일 경남 고성 하이화력발전소에서 배관공사 하던 주아무개(47)씨 질식사
△10월22일 밀양역 선로보수 작업 중이던 장아무개(49)씨 열차에 치여 사망

도급, 위험의 외주화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1월20일치 <한겨레> 인터뷰에서 개정 산안법에서 김용균의 업무를 도급업체 비정규직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 “위험업무의 하도급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건 과잉규제가 될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지난 8월 진상조사 뒤 제시한 권고안 22개 가운데 첫번째로 “노동안전을 위한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들었다. 일곱번째는 “경상정비 및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의 민영화·외주화 철회”다. 특조위는 “원·하청 구조는 흐름 공정을 분할하고 절단해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위험 관리의 공백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사 노동자의 안전사고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발전회사가 그들의 안전을 위한 설비 개선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협력사 또한 이를 본받아 더 위험한 업무의 재하도급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책임도 재하도급 업체로 넘기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발전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7년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 통계 산출’ 보고서를 보면,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로 숨진 이의 수는 하청이 1.77명으로, 원청(0.25명)보다 7.08배 많았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가장 큰 사각지대는 원청의 책임”이라며 “사내 도급은 당연하고, 사외 재도급과 납품업체 노동자의 안전을 최종 수혜자인 원청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계에서 잔뼈가 굵은 손낙구 보좌관(이용득 의원실)은 이렇게 말했다. “1994~95년에 부산의 조선소 노조협의회에서 일했다. 국내 대형 조선소 6곳의 노조가 가입한 데였는데 사망사고가 너무 잦아 집계해보니 일주일에 한명꼴로 죽더라.(조선업은 여전히 매해 50여명씩 업무상 사고로 숨진다.) 떨어져 죽고, 쇠꼬챙이에 꽂혀 죽고, 폭발사고로 죽고… 그렇게 처참했다. 그때 만든 구호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달라’였다. 그런데 지금도 사람들은 대규모 사고나 나야 관심을 갖지, 1년에 2천여명이 산재로 죽는 것엔 너무도 익숙하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구호가 만들어진 때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여전하다. 건조한 숫자와 앙상한 활자가 이들의 죽음을 다 담아낼 순 없을지언정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