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태우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서울역 앞 택시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내년 1월1일 ‘사납금’ 제도의 폐지와 완전월급제 시행을 앞두고, 택시회사들이 사납금의 이름만 바꾼 채 택시 노동자들한테 받는 돈을 대폭 인상하는 등 탈법행위가 전국에서 잇따른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정근로일수를 줄여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한 것처럼 꾸몄다가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청구 소송을 내자, 이를 포기하라며 해고 등 각종 보복을 하는 사례도 공개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납금 폐지법 시행일이 불과 15일 남은 지금, 전국의 택시 현장에서는 사납금제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월 기준금’ ‘성과급 산정을 위한 월 기준 운송수입금’ 등으로 명칭만 바꾸고, 월급제를 시행한다는 핑계로 1일 기준금을 무려 2만~5만원 대폭 인상하고 ‘초과운송수입금’ 일부를 회사 몫으로 취하는 협약을 맺어 택시 노동자들의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라고 밝혔다.
법인택시 기사가 회사에 매일 일정한 액수를 내는 사납금은 이들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단거리 승차 거부로 인한 택시 서비스 질 저하 원인으로 꼽혀왔다. 이들의 임금은 ‘고정급’과 ‘초과운송수입금’(하루 운행 수입 가운데 사납금을 뺀 나머지)으로 구성되는데, 고정급은 낮고 사납금은 높았던 탓이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택시업계는 최근 맺은 임금협정에서 사납금을 ‘월 기준 운송수입금’으로 이름을 바꿔 기존보다 75만7천원 올린 415만원으로 책정했다. 반면 고정급은 1년 근속 기준으로 46만2521원을 인상해 190만842원이다. 택시노조 쪽은 “이는 종전의 사납금제와 다름없는 형태”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택시회사가 체불임금 소송 포기를 강요하며 승무시간 제한 등 불이익을 주는 일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택시회사에서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지 따질 땐, 초과운송수입금은 놔둔 채 고정급만 소정근로시간으로 나눠 계산한다(고정급/소정근로시간). 이 때문에 택시회사들은 취업규칙 변경 등을 통해 ‘분모’인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분자’인 고정급을 올리지 않는 꼼수를 부려왔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 4월 ‘최저임금 지불을 회피할 의도로 택시 노동자의 소정근로시간을 축소하는 것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에 근거한 택시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청구 소송이 잇따랐다.
경기도 화성시 ㄷ운수의 노조위원장이었던 최규학(53)씨는 “3년간 최저임금보다 적게 지급한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가 지난 14일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최씨는 소송을 낸 뒤 5시간밖에 일하지 못하는 ‘보복’을 당했고, 이 때문에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려고 대리운전을 뛰었다가 ‘겸업금지 위반’으로 해고됐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 쪽은 소송을 낸 다른 조합원들에겐 ‘소송을 포기하면 업무에 원상복귀시켜 주겠다’고 회유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국토교통부는 시행일이 15일 남은 상황에서 각 지자체에 ‘사납금 폐지법 시행지침’조차 전달하지 않아 현장에 혼선만 주고 있다”고 주무부처의 수수방관을 꼬집으며 “정부는 대법원 판결과 사납금 폐지법을 철저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선담은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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