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시 연화장에서 열린 고 김태규 노동자 1주기 추모제에서 누나 김도현씨가 술잔을 올리고 있다. 김도현씨 제공
누나는 아직도 그날의 분노를 잊지 못한다. 지난해 4월16일, 김도현(30)씨는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을 찾았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네살 아래 동생 태규씨가 엿새 전 5층에 있던 승강기와 벽 사이의 43.5㎝ 너비 틈새로 추락해 숨진 곳이었다. 찢기는 마음을 부여잡고 겨우 장례를 치른 뒤 사고 현장을 찾았는데, 동생이 숨을 거둔 현장은 이미 훼손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사고 직후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5층에 있던 승강기가 이미 1층으로 내려와 있었다. 현장 관계자에게 따져 묻자 “1층에 있는 게 보기 좋기 때문”이라는 무심한 답이 돌아왔다.
엿새 전 그날도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3년 간 일하던 서비스직을 그만두고 카페를 창업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서를 쓰기로 한 그날 오전, 김씨는 걸려온 전화 수화기에서 사흘 전부터 공사장에 출근한 동생이 추락해 숨을 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공사장에는 승강기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흔한 추락 방지망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숨져 있는 동생은 안전화와 안전모,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건설사는 “일용직이어서 안전화를 주지 않았다”고, 역시 무심하게 말했다. “분노가 단 한 순간도 사그라지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를 한 김씨가 지난 1년을 되짚어보며 이렇게 말했다.
두 차례 분노 이후 김씨는 카페 창업을 꿈꾸는 ‘김도현’의 삶을 접고 ‘태규 누나 김도현’의 삶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친구, 동생 친구까지 네 사람이 2주 동안 합숙하며 경찰서와 고용노동부, 소방서 등을 오가며 관계자들을 만나 따져 물었고, 집에 와서 녹취를 풀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았다. 동생이 안전장비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승강기가 사용승인조차 받지 않고 작동됐다는 사실도 모두 김씨가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가며 겨우 찾아낸 진실들이었다.
그런 노력이 조금은 통했을까.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여름 공사 현장에 조도 관리와 추락방지망 미설치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애초 동생의 죽음을 단순 실족사로 처리하려 했던 경찰도 지난해 11월 말 2차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찰은 건설사 대표이사와 현장소장, 차장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중간 관리자인 현장소장과 차장만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가 항고했지만, 검찰은 기각했다. 김씨는 “사람이 죽어도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최종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며 재정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여전히 “그날 5층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아울러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씨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훨씬 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위험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는 물론이거니와 인허가 공무원에게도 무거운 형사책임을 지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 죽어도 400여만원 벌금만 내면 처벌받지 않는 산재공화국이에요. 저는 앞으로도 ‘태규 누나 김도현’으로 살 겁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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