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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뉴스AS] 사회적 대화는 왜 민주노총의 ‘볼드모트’가 됐나

등록 2020-07-03 05:00수정 2020-07-03 07:54

1998년 노사정위 탈퇴 경험 뒤
‘정부 들러리’ 우려 커져 금기시

김명환 위원장 복원 의지 컸지만
조합원들 설득 과정서 한계 노출

강경파 “비정규직·특고 보호대책 없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 검은 마스크 쓴 이)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의 잠정합의에 반대하는 비정규직 조합원 등에게 항의를 받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 검은 마스크 쓴 이)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의 잠정합의에 반대하는 비정규직 조합원 등에게 항의를 받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코로나19 때문에 노사 모두 어렵고, 정부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모여 앉았지만 지극히 낮은 수준 이상으로는 합의하기 어려울 거다. 게다가 민주노총 안에는 노사정 대화라는 틀 자체를 도그마(독단적인 신념)적으로 싫어하는 분위기가 일종의 유산처럼 남아 있어서 쉽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5월 중순, 민주노총 출신의 한 인사는 이렇게 내다봤다. 기대라곤 찾아보기 힘든 이 부정적인 전망은 지난 1일 민주노총 강경파의 반발로 최종 합의안 서명 15분을 남기고 현실로 입증됐다. 민주노총은 왜 ‘막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김대중 정부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맺었다가 내부 반발로 사퇴했다. 전교조 합법화, 의료보험 통합 같은 성과를 얻어냈지만, 내부에선 정리해고제 요건 완화와 파견법 시행 등에 합의했다는 점을 크게 문제 삼았다. 그 길로 노사정위에서 탈퇴한 민주노총에서 노사정 대화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악당 ‘볼드모트’처럼 금기어가 됐다. 노사정 대화 참여를 ‘정부 들러리’ 서는 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제3노총 설립 시도 등 정권 차원에서 민주노총을 적대시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노사정 대화보다 대정부 투쟁을 우선시하는 이런 기류는 더욱 강화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김명환 당시 후보는 “고립, 분열, 무능을 넘어 새로운 30년을 개척하는 민주노총”을 강조하며 노사정 대화 복원을 공약했다. 강경 투쟁 일변도라는 민주노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부와 경영계를 상대로 ‘집단적 교섭의 틀’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산별 노조지만 기업별 노조의 틀을 다 벗지 못한 한국 노동조합과 교섭의 형태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노동운동가로서의 바람도 깔려 있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 자신이 논의 당사자였던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민주노총 참여가 지난해 1월 대의원대회에서 무산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고, 민주노총 내부에서 이를 받아들인 건 그만큼 해고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코로나19라는 전국적 감염병 사태로,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현장 투쟁’을 통해 관철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동력이 됐다. 이번 잠정 합의에 반대하는 산별·지역지부 대표자들 역시 지난 4월16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 추진 결정에 동의한 바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2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11차 중앙집행위원회의에 앞서 윤택근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2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11차 중앙집행위원회의에 앞서 윤택근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접어두고 보면, 잠정 합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고 금지’ 같은 노동자 보호 대책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쪽 한 인사는 “항공산업에 쏟아부은 돈이 8조원인데 (아시아나항공의 재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에선 집단해고가 발생했다. 8조원이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전부 살 수 있는 돈인데, 국민 세금으로 그런 지원을 하면서 왜 해고는 못 막느냐”며 “이런 추상적 수준의 합의는 기업이 어렵다고 안 지키면 그만이라, 노동자들한테 오히려 족쇄만 된다”고 날을 세웠다.

비정규직 조직에선, 기업 경영과 정규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비정규직이나 고용보험 바깥의 특수형태근로자 등의 고용·생계 안정 대책은 이 잠정합의안에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정규직 90% 고용유지 조건으로 기업에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주겠다면서, 비정규직과 해고 가능성이 있는 정규직 10%의 고용안정 대책이 없는 점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안에 포함된 특수형태근로자는 법에 규정된 77만명뿐으로, 나머지 143만명 등의 대책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잠정 합의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집행부가 ‘최종목표’보단 정부와의 대화 자체에 맹목적으로 매달린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노사정 합의 성사에 치중한 나머지 조직 내 사회적 대화 반대론자들은 물론 3년 전 선거 당시 현 집행부를 지지했던 조합원들에게 이번 합의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 노동계 인사는 “집행부는 노동계가 일부 양보를 하고 득을 취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겠지만, 반대 입장에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합의인 만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요구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다.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각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정책 담당자 회의, 중집 등 관련 회의가 주 1회 이상 열렸는데 소통이 부족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통일주체국민회의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적 대화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노사정 대표자가 방향을 결정하면, 그것을 이행할 주체들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혜정 선담은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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