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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고통 여전한 ‘직장내 괴롭힘’…직장인 72% “달라진게 없다”

등록 2020-07-15 18:51수정 2020-07-16 02:42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직장갑질. 게티이미지뱅크
직장갑질. 게티이미지뱅크

#1. “5인 미만이 일하는 복지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시설장은 회의 때마다 기관의 일을 외부에 알리는 직원에 대해 ‘모가지를 자르겠다’고 협박합니다. 폭언을 말리면 ‘이 ×같은 ×아. 왜 너만 말대꾸야!’라고 윽박지르는데, 출근하는 게 지옥 같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은 고용노동부도 못 도와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2. “상사와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던 중 상식 이하의 욕설을 들었습니다. 가해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니 저를 타 부서로 발령냈는데, 새 부서장도 가해자와 친한 사람인지라 각종 시비와 왕따 등 ‘갑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회사에 정식으로 신고했지만, 별문제가 아니라며 가해자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선 오히려 제 잘못만 따지며 몰아붙였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1년(16일)을 맞아, 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 주최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1년(16일)을 맞아, 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 주최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 119’에 올 상반기 제보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가운데 일부다. 16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2)이 시행 1년을 맞는 가운데,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지난 1년 사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 불가와 광범위한 사각지대 등으로 이 법이 직장 내 괴롭힘의 실질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 공동주최로 15일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지식융합학부)가 발표한 직장인 1000명 대상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법 시행 이후 1년간 소속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변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1.8%가 ‘변화 없다’고 답했다. ‘감소했다’는 답은 19.8%에 그쳤고, ‘늘었다’는 이도 8.4%나 됐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당했을 땐 ‘고용노동부 등 외부기관에 신고’(21%)하거나 ‘사내 고충 제기 또는 신고’(20.7%) 등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답변과, △가해자 이외 동료와 상담(23.5%) △사직(13%) △무대응(8.4%) △전보 요청(1.8%) 등 개인 차원의 대응을 하겠다는 답변이 엇비슷했다. 법 시행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수의 직장인이 일터에서 겪는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이상희 교수는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피해를 호소한 자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괴롭힘 피해 신고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하는 응답자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엔 현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 현행법의 한계가 있다. 우선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발생 때 조사·조치 의무가 있는 사업주가 문제를 방관해도 이를 처벌할 조항조차 없다. 인사·교육제도가 사실상 전무해 안 그래도 직장 내 괴롭힘 피해에 취약한 5인 미만 사업장은 물론, 파견·하청 노동자가 원청 소속 가해자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이 법에 해당 사항이 안 된다. 이런 차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직장갑질119가 이달 초 직장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75.2%)과 300인 이상 기업(75.7%) 노동자의 약 75%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종사자의 40%만 이 법을 안다고 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가해자 처벌조항을 만들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만큼 괴롭힘의 인정 기준을 현재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영세사업장일수록 상습적인 괴롭힘 가해를 제재할 방법은 없다”며 “최근 고 최숙현 선수 폭행 사건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1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담은 김양진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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