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물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내놓은 정부가 종사자 보호 강화 내용 등이 담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의 연내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화물노동자와 관련 업계에서는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생활물류법이 통과되면 그동안 ‘허가제’로 수급이 조절됐던 택배용 화물차량이 늘어나 운송 단가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법 제정을 촉구해온 택배노동자들과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생활물류법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8일 대표발의해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 법은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운수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업과 이륜자동차 배달업의 제도화, 종사자·소비자의 권익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택배 등 배송시장 규모는 2009년 2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3000억원까지 성장했지만, 기존 화물운수법은 화주와 화물차 운전기사가 직접 계약을 맺는 형태의 화물차 운수업에 대한 규율이 주 내용이어서 택배기사가 택배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집배점)을 통해 일감을 받는 다단계 구조의 택배업을 규제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제정을 촉구하는 생활물류법안은 △택배기사 일자리 안정(계약갱신청구권 6년까지 보장) △낮은 수수료의 원인인 화주의 ‘백마진’ 금지 △정부의 택배사 평가 때 종사자 권익을 기준에 포함 △택배사가 대리점의 안전·보건조처 이행 관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책위의 설명을 보면, 국토위 소속 여야 의원 30명 가운데 민주당 16명, 국민의힘 1명 등 모두 17명이 법안에 찬성 의견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화물기사들은 생활물류법 통과로 택배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 영업용 화물차량이 급증해 노동자들 간 경쟁이 과열되고 운임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2004년 ‘화물차 수급조절제’ 시행 이후 ‘배’자가 붙은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은 신규 발급이 제한돼 증차를 위해선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때문에 일부 택배기사들이 영업용 번호판이 아닌 자가용 번호판을 달고 배송 업무를 하다가 화물운수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 등이 영업용 번호판 등록제를 요구하는 이유다. 이들은 택배기사의 경우 택배사로부터 코드(일종의 사원번호)를 발급받아야 일할 수 있는 점, 택배 수수료는 택배사와 화주에 의해 결정되는 점 등을 들어 택배차량 증차가 화물 운임 하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에서도 화물기사들이 다수 소속된 공공운수노조는 생활물류법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김종인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미래전략위원장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법안이라면서 주 5일제 도입, 분류작업 규정 조항 등은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강경우 한양대 교수(교통·물류공학)는 “잇따른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한 종사자 보호법은 필요하지만, 그동안 번호판 총량제로 인해 웃돈을 주고 이를 거래해온 화물기사들의 사정도 간과할 순 없다”며 “지난해 ‘카카오 카풀’과 ‘타다’를 둘러싼 택시업계의 반발에 비춰볼 때 정부가 먼저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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