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전태일 열사가 스러져간 평화시장에서 열네 살 나이로 봉제일을 시작했다. 허리도 못 펴는 다락방에서 쏟아지는 잠을 이기려 ‘타이밍’을 삼키며 일하던 시절. 깜박 졸다 미싱 바늘이 손가락에 박히자 당차게 ‘산재처리’를 해달라며 찾아간 곳이 청계피복 노동조합이었다. 그렇게 조합을 알고 전태일 열사를 알게 돼 평생 정의롭게 살 수 있었단다. 늘 경찰이 뒤를 쫓고 노조활동을 빨갱이 짓이라 몰아대던,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리는 모진 시간들. ‘창동 어머니(이소선 여사)’가 있었고 동갑내기 태숙이 같은 동지들이 함께였기에 가시덤불 헤치며 새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 열사가 제 몸을 불사른 지 올해로 50년. 열심히 일한 세월에 비해 그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나이 들면서 눈이 나빠진 동료들이 미싱 대신 빌딩 청소하러 다니는 걸 더 안타까워하는 조미자씨. 조합에서 만난 남편 최현진씨와 함께 정직한 땀을 흘리며,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는 조미자씨. ‘청계’와 함께 한 ‘청춘’을 한땀 한땀 박아 넣으며 오늘도 그는 미싱을 탄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