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9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상자를 옮기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택배 상하차 업무에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노동계와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고강도 심야노동으로 인해 ‘지옥 알바’라고 불리는 상하차 업무에 대한 노동 환경은 개선하지 않고 이주노동자에게 이를 떠맡기는 것은 “위험의 이주화”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16일 관보를 보면, 법무부는 전날 이주노동자의 취업 업종을 확대하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가 △택배 상하차 △식육 운송업 △광업 △과실·채소류 도매업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는 300명 미만의 제조업이나 축산업, 어업 등 39개 업종에만 종사해왔다. 법무부는 다음달 26일까지 입법예고 과정을 거친 뒤 시행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앞서 경영계는 택배 상하차 업무에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지속해서 정부에 요구해왔다.
택배 물류센터의 상하차 노동자들은 심야에 10시간 이상 중량이 높은 택배를 화물차에서 내리고, 컨베이어벨트에 싣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이 업무는 택배·물류사가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이 주로 맡는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상하차 일용직 노동자 1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택배 물류센터 노동실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7.7%는 일하던 중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에 노동계와 이주민 인권단체는 열악한 노동조건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정규 변호사는 “건설업과 같은 업종에서도 이주노동자 취업이 허용된 뒤 안전설비 투자를 하지 않아 이주민이 위험을 부담하는 일들이 발생해왔다”고 말했다. 백선영 민주노총 전략조직부장도 “이주노동자가 고강도 노동인 택배 상하차를 맡게 되면 소통이 익숙하지 않아 더 심한 산재 사고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의 산재 발생 현황을 보면, 2019년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사망자는 104명으로, 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고 사망자 수를 뜻하는 사고 사망만인율이 1.2였다. 같은해 전체 산재사고 사망만인율(0.46)의 2.6배 수준이다.
한편, 로젠택배 경북 김천터미널 소속 김종규(51)씨가 지난 13일 분류 작업을 마친 뒤 자신의 차 안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5일 밤 숨졌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은 하루 10시간씩 주 6일 주당 평균 60시간 노동을 해왔다”며 “152㎢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구역의 배송을 담당해왔다”고 밝혔다. 또 대책위는 김씨가 지난해 7월 제출한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서를 공개하며 “사측에 의한 강요로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청서에는 신청자가 자필로 작성해야 하는 ‘본인신청확인’ 난이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박준용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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