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화장품 매장 직원들이 노동절에 다 함께 쉬기로 하자, 샤넬코리아가 5월1일 토요일에 매장 대부분을 닫는다고 공지했다. 이는 노동절이 낀 주에 되레 휴일을 하루 줄여 사실상 주 6일 근무를 지시했던 샤넬코리아에 직원들이 맞선 결과다.
30일 샤넬코리아는 화장품 매장에 공지문을 비치해 “5월1일 ‘근로자의 날’로 휴업을 진행하게 되었으니 양해 부탁드린다. 5월2일부터는 정상 영업한다”고 안내했다. 이는 매장에서 일하는 영업직원들이 회사의 휴일 축소에 맞서서 법정 휴일에 쉴 권리를 공동 행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전국 백화점·면세점에 자리잡은 70여개 화장품 매장 중 60여개가 노동절에 문을 닫게 됐다. 조합원이 아닌 직원들이 출근해서 문을 여는 일부 매장만 영업을 한다.
노동절은 1886년 5월1일 미국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주 8시간 노동제 법제화를 요구하며 노동단체의 총파업을 이끈 데서 유래했다. 미국, 캐나다 등 각국이 노동절을 따로 정해 지키고 한국도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유급휴일로 정했다.
샤넬코리아가 오는 5월1일에 매장을 휴업한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30일 각 매장에 비치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 제공
손님이 많은 토요일에 직원들이 쉬게 된 건 샤넬코리아가 주말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이틀간의 주중 휴일을 주지 않으려 했다가 벌어진 일이다. 샤넬코리아는 지난달 샤넬 화장품 매장의 영업직원들에게 전체 메일을 보내 ‘노동절 토요일 근무는 다른 주간과 달리 별도의 휴일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알렸다.
영업직원들은 이제까지 손님이 많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근무하는 대신에 평일 가운데 이틀을 휴일로 쉬는 식으로 주 5일 근무를 했다. 하지만 올해 노동절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주중 휴일을 하루만 쉬고 사실상 주 6일을 일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는 일주일에 이틀을 휴일로 부여한다고 정한 샤넬코리아와 영업직원 간의 단체협약에도 위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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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화장품 영업직원들은 샤넬코리아를 상대로 서울지방고용청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휴일을 보장받을 방안을 고민했다. ‘노동절에 일하는 사람에겐 별도의 주중 휴일을 주지 않겠다’는 샤넬코리아의 논리를 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노동절에 모두가 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제까지 샤넬 영업직원들은 주말에 손님이 몰리는 점을 고려해 가급적 주말을 피해 평일에 쉬었는데, 오는 5월1일엔 모두가 쉬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평일에 하루, 노동절에 하루 쉬게 돼 평소대로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다. 앞서 샤넬코리아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휴무 신청이 가능한 예시로 ‘5월1일을 포함해 주중 이틀을 쉬는 경우’를 들었다. 샤넬 직원들은 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휴식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법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실제 휴일을 인정받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샤넬코리아 화장품 매장 관리자들은 매장을 돌거나 개인적으로 연락해 직원들에게 ‘정말 쉴 거냐’, ‘매장은 누가 보느냐’며 휴일 신청을 취소하도록 수시로 채근했다. 끝나지 않는 실랑이에 직원들이 지쳐갈 무렵 이들이 속한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샤넬코리아 지부가 회사에 마지막 공문을 보냈다. ‘5월1일은 근로제공의무가 없는 휴일이며, 이날 쉬는 직원에 근무를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고 이의가 있으면 답하라고 한 것이다. 샤넬코리아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다가 이날 노동절 휴업 사실을 공식화했다.
김소연 샤넬 지부장은 “회사 쪽이 휴일을 못 준다고만 하지 않았어도 원래 근무하던 대로 5월1일에 출근할 예정이었다”며 “직원들이 부당함을 호소하고 회사와 대화를 시도했는데도 회사가 휴일을 못 준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는 바람에 토요일에 모두가 쉬기로 결론을 낸 것”이라고 했다. 샤넬과 달리 이솝, 클라란스 등 백화점에 입점한 대다수 화장품 브랜드는 5월1일 근무자와 휴무자 모두에게 이틀치 휴일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박경수 법무법인 여는 노무사는 “노동자들이 근로자의 날에도 당당하게 쉬지 못하고 회사 영업에 협조하려 했는데 회사가 원래 있었던 휴일마저 뺏으려 해 정당한 조치를 한 것”이라며 “근로자의 날은 원래 노동자가 쉬어야 하는 날이며, 멀리 돌고 돌아 그날 쉬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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