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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갈 수 없는 마을 ‘에버랜드 속 동막골’

등록 2006-05-03 14:04수정 2006-05-03 15:35

심노원·구말순씨 부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곳에서 살다 묻히고 싶을 뿐이다.
심노원·구말순씨 부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곳에서 살다 묻히고 싶을 뿐이다.
이주 거부 ‘외딴 삶’ 용인 가실리 마지막 주민 심노원·구말순씨 부부

용인시 포곡읍 처인구 가실리. 서울에서 자동차로 채 1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놀이공원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에버랜드가 한 걸음에 닿을 듯 가까운 호암미술관 뒤편 산골짜기 동막골에 칠순의 노부부 심노원(73)씨와 아내 구말순(68)씨가 산다. 휴대폰으로 텔레비전까지 보는 시대. 하지만 노부부 집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전화선도 이어지지 않았다.

에버랜드 쪽의 굴착기 바퀴자국이 끝나는 산 밑 하늘색 지붕이 심노원·구말순씨 부부가 칠십 평생 살아온 동막골의 마지막 집이다.
에버랜드 쪽의 굴착기 바퀴자국이 끝나는 산 밑 하늘색 지붕이 심노원·구말순씨 부부가 칠십 평생 살아온 동막골의 마지막 집이다.
심노원씨가 손전화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에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인사를 하고 신분을 밝히니 첫 마디에 걱정이 서려있다. 동막골 입구에 자연농원(심노원씨는 아직도 에버랜드를 자연농원이라 호칭했다) 직원들이 지키고 있어 찾아와도 집까지는 올라오지 못할 거란다. 실제로 그랬다. 심씨 부부가 살고 있는 동막골에 가려고 에버랜드를 지나 호암미술관과 글렌로스골프장 사이로 난 비포장 길을 따라 1km정도 올라가니 에버랜드 직원이 길을 막는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비켜서지 않고 제지하는 그를 비켜서 차를 둔 채 그냥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소리치며 뒤 쫓아 오는 그를 뒤로 한 채 500여 미터를 걸어 심씨 집에 도착하니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한다. 뒤 이어 연락을 받고 달려온 듯 차들이 도착하고 에버랜드 직원들이 내린다. 칠십 평생 전기도 없이 살아가는 두 노인의 사연이 궁금해 취재를 왔다는 이야기와 당신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에버랜드 쪽의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상황이 있으면 정중하게 취재를 요청할 테니 그 때 설명해달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돌아선다.

전기도, 유선 전화도 없이 육지 안의 섬에 사는 칠순의 노부부, 그리고 에버랜드 직원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힘든 세월이었지만 처마밑에 놓인 신발처럼 노부부는 늘 함께했다. 파를 씻고 있는 부인 구말순씨의 흙때 묻은 손이 절박한 일상을 보여준다. 땅거미가 진 뒤 찾아오는 어둠도, 외로움도, 촛불도 이제 노부부의 친구다. (왼쪽부터)
힘든 세월이었지만 처마밑에 놓인 신발처럼 노부부는 늘 함께했다. 파를 씻고 있는 부인 구말순씨의 흙때 묻은 손이 절박한 일상을 보여준다. 땅거미가 진 뒤 찾아오는 어둠도, 외로움도, 촛불도 이제 노부부의 친구다. (왼쪽부터)

심노원씨가 말하는 ‘내가 여기 사는 이유’

‘자연농원’ 사람들이 내려갔네요. 조금 쌀쌀하지요? 불이나 지펴야겠어요.

나는 뭔 상황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곳에서 나서 이곳에서 자랐고 어려서나 지금이나 전기와 전화가 없는 것에 연연치 않고 내 나이 칠십이 넘도록 평생 조상들을 모신 선산을 지키며 살아온 것뿐인데….

최근에 내가 이렇게 사는 이야기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아오자 자연농원 직원들이 덩달아 난리를 쳐서 정신이 없고 마음에 부담이 되요. 6.25 나고서도 한참 동안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이 소리고개를 넘어 다들 서울로 갔어요. 용인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분당, 성남, 천호동으로 나갔거든요.

그런데 30여 년 전 마을 앞으로 자연농원이 들어서며 길이 막히고, 이웃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이 모두 땅을 팔고 떠나 이제는 우리 집 한 채만 남게 된 거지요. 여기는 청송 심씨 부윤공파 종중산이예요. 다들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나는 16대조 양혜공 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조상들을 모신 선산을 팔수가 없어 지금까지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것 뿐 이예요.

30년전 ‘자연농원’ 들어서며 길 막히자 이웃들 모두 뿔뿔히
전기 달라니 땅 팔고 떠나라네 그까짓 것 없어도 잘 사는 걸

심노원씨는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마당의 피나무를 안아보고 있다. 집 바로 뒤 선산에 모신 부모님의 묘. 빛바랜 가족사진 등이 그가 동막골을 지키는 이유다. (위부터)
심노원씨는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마당의 피나무를 안아보고 있다. 집 바로 뒤 선산에 모신 부모님의 묘. 빛바랜 가족사진 등이 그가 동막골을 지키는 이유다. (위부터)
자연농원 처음 생길 때 한 번 그리고 저 아래 골프장 새로 생길 때 또 한 번, 혹시 우리 집에도 전기를 들일 수 있을까 싶어 알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자연농원과 한전에 알아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예요. 생각 같아서는 자연농원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라 쉽게 전기를 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해서 그냥 그러고 말았어요. 자연농원 쪽에서는 전기이야기만 하면 그렇게 불편하게 살지 말고 땅을 팔고 이사하라는 말만 해서 그 다음엔 아예 얘기도 안 했던 거고요. 그리고 그건 말도 안 되지요. 선산이 아니라면 몰라도 나 편하자고 이 땅을 어떻게 팔아요. 나 죽더라도 땅을 팔지 말라고 자식들에게도 다짐을 해 놓았지요.

이 나무 보세요. 피나무거든요. 이 나무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요. 피나무는 워낙 속이 야물어 바둑판이나 가구 목으로 많이 쓰인다잖아요. 피나무처럼 야무지게 살아가라고 조상들이 심어놓으셨나봐요.

방으로 들어가실까요. 이 사진 좀 보세요. 아버지와 셋째 작은 아버지 그리고 막내 삼촌과 조카딸 아이 사진이지요. 집 뒤에 부모님 산소를 모시고 매일 들여다보는 자식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부모님도 선산을 지키다 돌아가셔서는 저렇게 조상들 앞에 묻히셨는데 내가 어떻게 이 땅을 팔겠어요. 밤이 어두워 촛불을 켜도 내 부모님은 저기 계시고 설사 전기가 들어와 이 집이 환하게 밝혀진다 해도 조상들께선 저기 계셔야 하거든요.

자연농원 사람들 이야기는 쓰지도 마세요. 우리 심가가 자존심이 강해서 이제껏 다른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아왔어요. 까짓 전기 없어도 이제까지 별 탈 없이 살아온 걸. 그런데 요즘 저렇게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길을 지키며 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면 쫓아 올라와 살피는 걸 보니 저들도 찔리는 데가 있긴 있나 봐요.

촛불이 외로운 밤 ‘친구’
기름 비싸 발전기는 ‘살짝’
세상과 소통은 휴대폰으로

심노원씨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선산을 지키려고 불편하게 살아온 지난 삶이 떠오르나보다.

요즈음엔 그의 집에도 가끔 전기가 들어온다. 자식들이 마련해준 발전기 덕이다. 경운기 엔진을 쓰는 발전기를 몇 해 썼으나 망가져 지금은 봉고차 엔진으로 전기를 만든다. 기름 값이 너무 비싸 그것도 마음대로 돌릴 형편은 아니라고 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2~3시간 돌리지만 이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고. 긴 밤 외로움이 밀려 올 때면 이따금씩 촛불을 켠다.

심씨 부부의 자녀들은 아들 셋, 딸 하나. 모두 자라 동막골을 떠나 살지만 휴일이면 잊지 않고 외로운 ‘섬’에 사는 부모를 찾아온다고 했다. 자녀들이 십시일반으로 가져다 주는 용돈이 노부부의 생활비다.

텃밭에 심은 강낭콩이나 상추 그리고 달랑무와 아욱 등은 주말이면 찾아오는 자식들 나눠주려 기르는 거란다.

전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자식들이 사다 준 핸드폰으로 바깥세상과 통화가 가능하다며 발전기를 돌릴 때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핸드폰 배터리 충전하는 거라며 웃는 심씨. 그 곁에 말없이 앉아 뒷산에서 뜯어온 봄나물을 다듬는 부인 구말순씨의 손에 든 흙물이 지나온 세월을 그려내는 듯하다. 여느 시골 노인들의 손과는 다른 느낌으로.

어느 덧 동막골에 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칠십 평생 불편함을 마다 않고 선산을 지키며 사는 심노원씨 부부는 아직 봄도 다 오지 않은 듯 골바람이 찬 동막골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촛불을 켰다.

글·사진 용인/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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