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동초교 ‘숲속 모심 교실’의 하루
부안동초교 ‘숲속 모심 교실’의 하루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부를 때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인다. 매주 한 차례씩 녹찻물로 아이들 발을 씻어준다. 교단일기와 가정통신문을 비롯해 선생님이 쓰는 모든 글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란 글귀로 끝을 맺는다. 아이들이 잘못을 하거나 약속을 어기면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큰절을 한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매나 벌은 일절 없다. 전북 부안동초등학교 이강산(53) 교사의 ‘숲속 모심교실’ 얘기다. 이 교사는 해마다 자신이 맡은 반을, 아이들을 섬기는 ‘모심교실’로 가꾼다. 올해 모심교실은 6학년 1반이다. 모심교실은 “모심 철학을 바탕으로 제도권 학교 안에서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교실”이다. 1989년 전교조 사태로 해직된 뒤 94년 복직하면서 ‘모심’을 교육의 으뜸 원리로 삼기 시작했다. “권위를 내려놓고 나를 낮추니까 아이들이 내 주변에 모이고, 비로소 마음문이 열리기 시작하더군요.” 이 교사는 모심교실이 민들레 꽃씨처럼 곳곳에 퍼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교사가 운영하는 숲속 교실 카페(cafe.daum.net/woodclass)에 가면 모심교실의 철학과 교육활동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전북 부안동초등학교 이강산 교사가 26일 오후 종례시간에 교실에서 반 아이들과 함께 명상체조를 하고 있다. 부안/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아침마다 포옹하고 매주 발씻어주기 #오전 8시 지난달 26일 부안초등학교 6학년 1반 교실. 이강산 교사가 들어서자 미리 와 있던 아이들 세 명이 쪼르르 달려와 선생님 품에 안긴다. 모심교실의 아침인사는 포옹이다. 이 교사는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안아주기는 “교사와 아이들의 마음문을 열어 주는 묘약”이다. 아이들이 대부분 도착하자 대야 2개에 뜨거운 물을 받아 녹찻물을 우려낸다. 그러고는 남녀 학생 한 명씩을 불러낸 뒤, 무릎을 꿇고 앉아 정성껏 발을 씻어준다. 선생님이 발을 씻어준 두 아이가 다른 친구 두 명의 발을 씻어주고, 두 명은 또 다른 친구 두 명의 발을 씻어준다. 2001년부터 7년째 매주 한 차례씩 해 오고 있는 일이다. 처음 두 달 가량은 이 교사가 모든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고, 그 뒤로는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릴레이 식으로 아이들이 친구의 발을 씻어준다. 권수훈(12)군은 “선생님이 손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자꾸 하다 보니 스스로를 낮춰 우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꽃·칠판 등과 나눈 대화들 글로 #자습시간 다른 친구들이 발을 씻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관찰일지를 쓴다. 관찰은 매일 아침 자습시간에 하는 교육활동이다. 처음에는 학교 운동장과 교실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 꽃, 곤충 등 생명체를 관찰하다 점차 책상, 칠판, 컵 등 주변 사물까지로 확장한다. 관찰이라기보다는 주변의 소중한 벗님들을 찾아 ‘침묵의 대화’를 나누는 활동이다. 모심교실에서는 아이들 이름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물에도 ‘님’자를 붙인다. 아이들은 매일 한 가지씩 대상을 정해, 자신과 관찰 대상이 주고받은 대화체 형식으로 관찰노트에 적는다. 이 교사는 “내 경험으로 보건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영성을 키워 주는 데 자연·사물 관찰 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또 아이들 이름과 모든 사물에 ‘님’자를 붙이고, 모든 글의 끝부분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써 넣는 것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종이님 구겨서…” 큰절로 잘못 고백 #오전 9시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힘차게 ‘반가 1’을 부른다. ‘밥도 맛있게 냠냠, 축구도 힘차게 뻥뻥…’으로 시작되는 경쾌한 노래다. 이어 1분 동안 웃음 터뜨리기를 한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가 돼 무작정 웃는다.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수업시간에 계속 딴짓을 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노라면 화가 치밀 법도 한데, 이 교사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님, 책상 위에 있는 거 집어넣으세요”라는 정도의 말이 꾸중이라면 꾸중이다. 그런데 수업 도중 갑자기 한 여학생이 일어나 큰절을 한다. “○○님, 왜 절을 하세요?” 이 교사가 묻자, 짝이 대신 답한다. “○○님이 종이를 구겼어요.” 이 말을 들은 한 아이의 맞장구가 걸작이다. “아, 종이님 아프겠다.” 이처럼 ‘님’자 붙이기와 물건 모시기는 겉치레가 아니라 모심교실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한 횟수만큼 큰절을 올려 사과하는 것을 모심교실에서는 ‘가지치기’라고 부른다. 농부가 식물이 잘 자라도록 가지를 쳐 주는 것에서 착안해 빌려온 이름이다. 아이가 분명히 잘못을 했는데 모른 척하거나 가지치기를 안 할 경우에는 이 교사가 대신 가지치기를 한다. 학생의 잘못을 대신해 절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마음으로 잘못을 깨닫는다. “가지치기를 하면 체벌을 당했을 때보다 내 잘못을 훨씬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두 번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돼요.” 집에서 동생과 싸웠을 때 동생 앞에서 절을 한다는 고한결(12)군의 말이다. 점심땐 밥 모시며 선생님과 이야기꽃 #점심시간 점심 급식을 먹는 일을 모심교실에서는 ‘밥 모시기’라고 한다. 우리의 피와 살이 되는 소중한 벗님이지만 그동안 함부로 대해 온 밥의 고마움을 깨닫고, 남기거나 버리지 않도록 지도하는 시간이다. 먹기 전에 밥을 위해 수고하신 분들과 밥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밥 모시기 시간은 아이들과 마음문을 여는 대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교사는 날마다 번호순으로 2~4명과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학교생활에 대해 물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의 꿈과 그 꿈을 갖게 된 이유, 꿈을 이루려면 준비해야 할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과 함께 조리실 아주머니들을 찾아가 “잘 먹었습니다”라고 고마움을 전한다. 명상체조·서로 맞절뒤 “내일 만나요” #오후 3시 모심교실은 종례시간도 다르다. 먼저 ‘○○님 고마워요. ○○님 사랑해요…’로 시작하는 ‘반가 2’를 함께 부른다. 여기서 ‘○○님’은 하루 중 가장 고마웠던 대상이다. 이어 교사와 아이들이 어울려 명상체조를 한다. 명상체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참을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끝으로 교사와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 엎드려 맞절을 한다. 이 교사는 “서로를 존경하고 우주의 모든 구성원들을 모시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모심교실의 하루는 늘 이처럼 포옹으로 시작해서 맞절로 끝을 맺는다. 부안/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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