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민들레 송인현(49) 대표
[느림과 자유] ‘농촌문화체험캠프’ 이끄는 극단 민들레 송인현 대표
연극인은 누구나 한번쯤 브로드웨이를 꿈꾼다. 다른 꿈을 꾸는 이도 있다. 극단 민들레 송인현(49·왼쪽 사진) 대표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의식의 원형을 심어주는 게 꿈이다. 그에 바탕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도,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킬 수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민족의식의 원형이 농경문화에 있다고 본다. 그가 연극과 농촌체험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이유다. 올해로 10년째다. 학교 수업이 없는 ‘놀토’가 되면 그는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 이화3리에서 농촌문화체험캠프를 연다. 주로 어린이들인 참가자들은 농사일을 체험하고 함께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지난달 8일 김포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과 가족들 70여명이 이화3리를 찾았다. 참가자들은 새끼꼬기, 거름내기, 도리깨체험, 닭모이주기, 쥐불놀이 등을 직접 해보고 저녁에는 〈은어송〉이라는 공연을 관람했다. 〈은어송〉은 2005년 고마나루 향토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상연되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여름방학이면 이화3리에서는 ‘똥벼락 캠프’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고추, 옥수수, 감자 등을 따보고 갯벌 체험을 한다. 연극 만들기와 상연은 물론이다.
아이들에게 전통문화 알리려 배우생활 접고 극단 꾸려
놀토마다 낮엔 농사체험 저녁엔 함께 연극 ‘뿌리 찾기’ 송 대표가 민족의식의 원형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95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연극인들의 국제캠프에서의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연극을 하면서 나라마다 고유한 민족의식의 원형이 있음을 깨닫고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됐다.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연극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식의 원형은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하다 농경문화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기성세대는 서구의 문화에 너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10년 정도 작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1996년 아이들과 농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민들레를 만들었다. 고민도 많았다. 그때까지 그는 주류 연극계에서 나름 잘나가는 배우였다. 1984년 그가 출연한 〈방황하는 별들〉은 “전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작품”이다. 서울예술단 단원과 경기도립 극단 연기지도 담당관 등을 지냈을 정도로 연극계에서 인정도 받았다.
“서울예술단을 그만둘 때 참 힘들었습니다. 많은 연극인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이었으니까요.”
민들레의 운영은 쉽지 않았다. 〈깨비 깨비 도깨비〉, 〈호,호,호랑이다〉, 〈놀부 도깨비 만나다〉 등 전통에 바탕하면서 현대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지만 관객들은 외면했다. 상연을 할수록 손해만 커졌다. “〈놀부 도깨비 만나다〉를 마지막으로 극단을 접을지를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때 어린이도서연구회와 동화읽는어른모임을 만났다. 전통에 바탕한 문화 교육을 고민하던 두 단체는 극단 민들레의 작품에 공감해 지역별 모임이 중심이 되어 초청 공연을 주선했고, 그때부터 극단의 운영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극단 운영이 안정되자 송 대표는 2002년부터 아이들을 위해 농촌체험과 연극을 결합한 주말체험학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농촌은 전통문화의 뿌리가 깃든 곳입니다. 농촌이 무너지면 우리의 정신적 뿌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이를 계속한 것은 아이들에게 전통 문화를 전하는 것이 연극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는 운영비 절감을 위해 농촌체험학습 장소를 고향 마을로 옮겼고 아버지한테 땅을 빌렸다. 그렇게 3년을 넘게 아이들과 함께 농촌체험과 공연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다행히 도움의 손길도 뻗쳐 왔다. 그의 제안으로 이화3리는 국내 최초로 연극을 매개로 한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정부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았다. 그는 사재를 보태 지난해 5월 야외극장, 강의동, 숙박시설 등을 갖춘 민들레연극마을을 세웠다.
올 겨울 송 대표는 서울에서 더욱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15일부터 2월3일까지 열리는 ‘어린이 축제 판’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극단 민들레는 이 행사에도 우리나라 탈을 소재로 만든 가면극 〈얼쑤, 독각귀!깍기할배〉(15~27일 오후 2시·4시 문화갤러리)와 〈똥벼락〉(29~2월3일 오후 2시·4시 문화갤러리)을 상연한다. 두 작품 모두 우리 전통 농경 문화에 바탕한 작품이다. 특히 〈똥벼락〉은 1000회 공연을 앞둔 작품으로 시골 마을의 욕심쟁이 김 부자가 욕심 때문에 도깨비로부터 똥벼락을 맞는 줄거리를 가진 연극이다.
“아이들은 민들레연극마을에서 농사일과 연극놀이를 통해 민족 고유의 문화와 장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체험학습 참여자가 늘면 농산물 판매로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화성/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놀토마다 낮엔 농사체험 저녁엔 함께 연극 ‘뿌리 찾기’ 송 대표가 민족의식의 원형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95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연극인들의 국제캠프에서의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연극을 하면서 나라마다 고유한 민족의식의 원형이 있음을 깨닫고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됐다.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연극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식의 원형은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하다 농경문화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기성세대는 서구의 문화에 너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10년 정도 작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지난달 8일 경기도 화성시 이화3리에서 열린 농촌문화체험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누에고치를 염색해 집이나 꽃모양 등을 만드는 고치공예(왼쪽)와 거름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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