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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조용한 ‘개국 10년’…여러 부작용에도 종편은 웃는다

등록 2021-12-01 04:59수정 2021-12-01 09:12

공급원 다양성 늘었지만 ‘어떤 다양성인가’ 의문
보수와 특정 연령층 가두는 ‘저수지’ 효과 지적도
“네거티브 규제보다 공공영역 논의 본격화할 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12월1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4곳이 공동 개국 축하쇼를 열며 방송을 시작했다. 2009년 2월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상정했던 신문-방송 겸영 등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행사장인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선 종편 특혜를 규탄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언론노조 집회가 열렸다. 한겨레·경향신문·국제신문 등 일간지는 1일치 1면에 항의의 뜻으로 백지 광고를 실었다.

종편 출범은 미디어 다양성을 확대할 것이란 입장과 거대 보수매체의 여론독과점을 심화할 것이란 입장의 격렬한 충돌을 낳았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대조적일 정도로 개국 10년을 맞은 올해는 조용하다. 한국언론학회가 두달 전 제이티비시(JTBC) 뉴스 및 콘텐츠 평가 세미나를 연 것을 제외하면, 정부는 물론 학계의 새로운 연구 발표나 언론단체의 토론회조차 없다. 종편들도 각각 연례 내부행사를 여는 정도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재승인 심사구조에 대해 ‘사회적 무력감’이 쌓인 탓일 수도, 종편이 이젠 시청자들의 생활에 안착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티티(OTT) 등장 등으로 미디어 환경이 또 다시 급변하는 가운데, 종편 정책과 미디어 생태계 변화에 대한 평가 없이는 ‘공공성’ 실종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상적으로 종편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얼마 전 공영방송 한국방송의 내년 방송 전망 세미나에서 티브이조선이 특별하게 언급된 것은 상징적이다. 2019년부터 트로트 프로그램 인기에 힘입어 급상승한 이 채널의 가구 시청률은 올해 2.52%(10월까지)로, 종편 중 처음 지상파인 문화방송을 앞질렀다. ‘트로트’ 효과는 뉴스 지형도 바꿨다. 한국방송의 콘텐츠 이용통합지수 ‘코코파이 지표’를 보면, 티브이조선 메인뉴스는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 메인뉴스를 올 1월 처음 앞선 이래 상반기 내내 한국방송에 이어 많이 보는 뉴스가 됐다. 시장에서의 방송사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광고매출을 봐도, 전체 방송통신광고비 중 지상파 점유율이 2012년 53.20%에서 2020년 32.74%로 떨어진 데 비해 종편 4사는 4.59%에서 17.85%로 올랐다.

하지만 이런 지표는 애초 장담했던 ‘새로운 파이 창출’이 아니라 지상파 몫을 종편이 뺏어온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충식 방통위 2기 상임위원은 “관료들이 회의에서 ‘종편이 출범하면 연간 10조 전체 광고시장이 15조로 곧 늘어난다’고 하더라. 이에 ‘종편도 올드미디어인데 말이 되냐. 관료들이 숫자놀음으로 국민을 호도한 게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실제 방송 광고는 2011년과 2019년 각각 3조7천억대로 제자리걸음이다. 가구 시청률도 4%대인 한국방송1티브이를 제외하면 종편과 지상파 모두 1~2%대다. 이명박 정권이 내건 ‘글로벌 미디어그룹 육성’ ‘미디어 융합’은 내세울 지표조차 없다.

자료: 방송통신위원회
자료: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 독점구조가 깨진 의미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종편이 ‘정치인 워너비’나 은퇴 정치인 등을 패널로 동원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토크쇼 시사프로’를 만든 것 또한 ‘낮시간대 방송’과 5070 시청자층을 새로 개발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공급원’ 증가가 양질의 콘텐츠 경쟁을 활성화하고 미디어 다양성이란 취지에 걸맞은 공론장 활성화와 사회통합을 가져왔느냐는 근본적 질문에 대해선 회의적 평가가 많다.

방통위는 지난해 종편 재승인 심사 때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처음으로 시청자 의견 청취를 받았다. <종편 재승인 백서>에 따르면, 티브이조선 관련 의견을 보낸 이들은 1만7천여명으로 다른 3사의 2배를 웃돌고, 75%가 ‘팩트를 왜곡한다’ ‘추측성 발언을 통해 폄하한다’ 같은 부정적 응답이었다고 한다. 콘텐츠 ‘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 중 하나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제재 통계를 봐도, 지난 2013년부터 올 9월까지 티브이조선은 법정제재 78건, 행정지도 403건으로 가장 많다. 2013년 채널에이 <김광현의 탕탕평평>이 제기했던 ‘5·18 북한군 개입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다가 올해에야 제이티비시 보도로 거짓임이 확인됐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공급원이 다양해졌다는 점과 5070 시청자를 새로 끌어들이는 등 노출 다양성은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노출 다양성도 보수층이나 특정연령대층이 자극적인 언어와 콘텐츠에 일종의 ‘중독’이 되도록 해 다른 매체 경험을 차단하는 ‘저수지’가 된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 여론 양극화 심화와 종편 역사는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애초 우려됐던 보수매체의 여론독과점 심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여론집중도 조사에서 생산자 기준 뉴스 이용점유율을 보면, 지상파군이 2013년 39.3%에서 2018년 24.5%로 줄어드는 동안 종편군은 26.5%에서 32.5%로 늘었다. 뉴스이용창구 기준으로는 포털에 이어 종편이 2위다. 방통위가 조사하는 방송 시청점유율에선 신문과 방송 결합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티브이조선의 경우 지난 2020년 방송 시청점유율은 6.677%였지만 조선일보 구독률 환산을 반영하면 11.13%로 뛴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1~2곳은 곧 망할 것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조중동·매경의 매체파워에 대한 과소평가가 아니었나 싶다. 보수매체 4곳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데다 신문 광고 효과가 떨어져도 방송으로 받을 수 있으니 양날개를 달았던 셈이다. 환경이 디지털로 옮겨갔다지만 최소한 보수 종이신문의 영향력 쇠퇴를 지연시켰고 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편 특혜 조치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무늬만 미디어렙’ 비판이 있긴 하나 2015년부터 종편도 직접 광고 영업이 금지된 데 이어, 문재인 정권 들어 방송통신발전기금 특혜나 채널 의무전송 특혜가 환수되고 지상파에도 올해 중간광고가 허용됐다. 하지만 보수정권의 공영방송 탄압으로 지상파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종편은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이티비시를 제외하고 한때 60%가 넘던 보도·시사 프로 비율은 이젠 모두 30%대이고 지상파가 따라하는 포맷도 내놓게 됐다. “종편이란 아기를 낳았는데 걸음마 할 때까지 보살펴야 한다”던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약속만큼은 철저히 지켜진 셈이다. 방통위는 재승인 때마다 ‘법정제재 *건 이하 유지’ ‘협찬 프로그램에 고지의무 강화’ 같은 조건을 늘리지만 행정소송 앞에선 무력해지기 일쑤다.

이제는 ‘규제 강화’ 논란을 넘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는 새로운 공공영역 키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종편 초기 심사 자료 정보공개청구를 이끌었던 단체인 언론개혁연대의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종편을 도입할 때 한편에서 공적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함께 갔다면 지금과 같은 전반적인 방송의 하향평준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네거티브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늘어나는 디지털 영역에 공적 서비스를 누가 어떻게 할지, 지상파에 대한 비대칭규제는 어떻게 완화할지 등을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최영묵 교수는 “지난 십수년간 미디어 정책이 ‘종편으로 무한경쟁을 연 것’ 외엔 없다시피 했는데 포털·오티티까지 시야에 넣은 통합 미디어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진보 종편’의 필요성을 제기하거나 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꿔 방송사 진출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허가·승인제가 이미 진입한 플레이어의 독과점 구조로 쓰이는 건 사실이다. 그동안은 장벽을 높여야 방송 질이 유지된다는 이유였는데, 진입은 낮추고 시장퇴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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