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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10년, 생존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등록 2022-02-09 04:59수정 2022-02-09 21:23

김용진 대표·최승호 피디로부터 듣는 10년 역사
“광고·협찬에서 자유로운 독립언론 가능성 입증”
교육·실습·창업 책임지는 ‘저널리즘스쿨’ 새 프로젝트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오른쪽)와 최승호 피디가 4일 인터뷰에 앞서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앞에 섰다. 둘의 인연은 2000년대 중반 ‘한국탐사언론인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오른쪽)와 최승호 피디가 4일 인터뷰에 앞서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앞에 섰다. 둘의 인연은 2000년대 중반 ‘한국탐사언론인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2년 1월27일 ‘뉴스타파’라는 낯선 이름의 뉴스 방송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선관위의 투표소 무더기 변경 의혹을 다룬 첫 방송에서 와이티엔(YTN) 해직기자였던 노종면 앵커는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언론인과 함께 죽어가는 저널리즘의 복원을 선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뉴스타파가 이후 달려온 세월은 한국 탐사저널리즘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과정임과 동시에 광고와 협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독립언론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최근엔 독립언론과의 연대와 협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교육-실무-창업을 논스톱으로 지원하는 ‘저널리즘스쿨’ 1기생을 모집(20일까지)하며 비영리 독립매체 인큐베이팅에도 나섰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기자와 피디 출신으로 뉴스타파의 ‘버팀목’이 돼온 김용진 대표와 최승호 피디를 지난 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만나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한 표 차로 결정된 이름

2011년 하반기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에 파견됐던 한국방송 박중석 기자와 문화방송에서 해고됐던 이근행 피디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언론 프로젝트 논의가 시작됐다. 탐사보도팀 해체 뒤 울산으로 발령이 났던 김 대표는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비공개’로 결합했다. 국민을 속이는 뉴스를 타파한다는 뜻의 매체 이름은 투표 끝에 결정됐다. “내가 낸 ‘탐사뉴스 참’과 노종면 기자가 낸 ‘뉴스타파’가 최종 경합을 벌였는데 6 대 7, 한표 차였다”(김 대표)고 한다.

언론노조가 내준 회의실 하나와 ‘언론개혁’ 관련 사업에 쓸 수 있는 민실위 예산 2천만원이 전부였다. 용산전자상가에서 50만원씩 주고 사온 관광용 캠코더, 일명 ‘주먹캠’ 두대가 이들의 촬영 장비였다. 편집기로 쓴 맥북 한대는 중고로 구입했고 또 다른 한대는 첫 방송 뒤 응원차 찾아온 ‘노종면 기자의 팬’ 공지영 작가가 기증했다고 한다. 창고를 개조한 더빙실에서 내레이션을 읽고, 앵커는 프레스센터 18층 창틀에 앉아 진행을 하며, 프롬프터 없이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며 논평을 하던 시절이다.

그렇게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뉴스가 일으킨 반향은 컸다. 이명박 정권 시기 공영방송이나 종편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강정마을, 4대강 공사현장, 삼성 백혈병 피해자의 모습에서 시민들은 ‘진짜 뉴스’를 발견했다. 유튜브가 대세가 아니던 시절, 첫 방송은 기술적 오류로 몇번을 재업로드했는데도 반년 만에 90만회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가장 짜릿했던 순간

애초 이리 긴 여정이 될 줄 몰랐다. 2012년 6월 문화방송에서 해고된 최 피디는 “곧 돌아갈 텐데라는 생각에” 시즌2 합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12월19일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직후 모든 게 달라졌다. ‘진짜 언론’을 살리자는 시민들 트위트가 번져가며 후원이 몰려들었다. 이듬해 초엔 2만명을 넘어섰다. 김 대표는 “해직자들도 자신의 노조에 돌아가 할 일들이 있고 대선 닷새 전 시즌2 고별방송까지 한 터였다. 하지만 이런 시민들 열망을 외면하면 죄를 짓는 것이란 말이 나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13년 2월 김 대표가 대표를 맡고 최 피디가 앵커로 합류하면서 20명 규모의 회사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매체명)가 출범했다.

2013년 6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조했던 조세회피처의 한국인 명단 발표는 뉴스타파의 이름을 널리 각인시킨 계기였다. 김 대표는 수개월간의 보안 작업 끝에 이 보도 협업 파트너 언론사로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은 순간과 최 피디의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보도 당시 중국 정부가 한국 법원의 사실 조회에 입출경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답했음을 확인한 순간을 ‘가장 짜릿했던 기억’으로 꼽는다. “보수언론들이 반대 방향의 보도를 내고 있던 때였다. 국정원 때만큼은 뉴스타파의 ‘단독’ 기사를 내보내고 싶더라. 내가 직접 쓰겠다고 나섰다”고 그는 말했다.

&lt;뉴스타파&gt; 10년을 맞아 김용진 &lt;뉴스타파&gt;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뉴스타파> 10년을 맞아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금의 미디어환경에서 돌이켜볼 때 뉴스타파는 출발부터 탐사보도와 데이터 저널리즘, 그리고 유튜브 영상이라는 강점을 가진 매체였다. “선견지명이 아니라 방송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에 올라탄 것”이라고 최 피디는 말했지만 차별성은 분명했다. 영화 <공범자들>이나 질문을 피해 도망가는 권력자들을 쫓아다니는 초기 뉴스 영상들을 보다 보면 웃음이 터져나올 때가 있다. 기존의 방송과 다른 문법이 가능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저널리즘적 장점은 끈질긴 보도일 것이다. 9년째 이어가는 조세회피처 보도, 세금 문제에 대한 지속적 감시, 영화 <자백>과 국정원 개혁으로 이어졌던 국정원 간첩 조작 보도 등은 ‘시그니처’ 아이템이 됐다. 최 피디는 “뉴스타파에선 본인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을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취재하고 만들어나간다. 언론인으로선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문화방송 사장에서 물러나 ‘약속대로’ 뉴스타파 현장 피디로 돌아온 최 피디는 이날도 곧 업로드할 4대강 관련 영상의 편집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내년쯤 영화도 공개할 계획이다.

돈만 내면 받는 스티비어워즈라는 상에 세금을 허비한 공공기관 문제를 파헤친 ‘트로피 스캔들’ 보도는 취재에만 15개월이 걸렸다. 사업자 등록까지 하는 ‘위장 취재’로 방송사 프로그램의 협찬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아침방송에서 체리를 팔아봤습니다’ 같은 유형의 보도는 뉴스타파 외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취재 윤리의 문제는 없을까? “서구 탐사보도에서도 위장 취재는 적잖이 쓰이는 방법이지만 기자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조직의 가이드라인이 중요하다. 취재의 마지막 수단이고, 그렇게 얻는 취재물로 인한 공익 기여가 신분을 감추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 분명해야 한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김용진 &lt;뉴스타파&gt; 대표(왼쪽)와 최승호 피디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뒤로 지난 10년 동안 &lt;뉴스타파&gt;가 받은 각종 상패들이 진열돼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왼쪽)와 최승호 피디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뒤로 지난 10년 동안 <뉴스타파>가 받은 각종 상패들이 진열돼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후원회원들이 ‘효능감’을 느끼는 보도

인터넷뉴스 부문 상위 20개 매체사의 포털 의존도가 2021년 90%(<여론집중도 조사>)에 이르는 시대에 뉴스타파에게 포털은 독자와 만나는 또하나의 창구일뿐 수입원으로서의 의미는 없다. 유튜브 영상엔 광고도 붙이지 않고 전재료도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6편을 제작한 영화(<판문점>은 미개봉)와 출판 수익은 2년 전 출범한 함께재단(이사장 김중배)으로 돌렸다. 외부와의 연대 협업이 더 효율적이라 여기기에 현재 제작진 48명을 크게 더 늘릴 생각은 없다. 다만 데이터 전문가를 확충할 계획은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기적’이라 할지 모를 10년의 원동력을 물었다. 김 대표는 “역설적이지만 생존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 같다”며 “어떤 조직이든 힘들고 위태로워지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생존하려는 게 관성이다. 우리의 목표는 공영방송이 망가진 상황에서 방송저널리즘과 탐사보도를 지키는 것이었고 존재 이유가 사라지면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고와 협찬을 받지 않는 이 ‘비영리 독립매체’는 후원회원 3만7천여명이 내는 회비 50여억원 안에서 예산을 짠다. 후원회원들은 페이지뷰가 높은 기사나 언론상을 타는 ‘훌륭한’ 기사보다 크던작던 기사로 인해 사회나 제도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확인할 때 ‘효능감’을 느낀다. “뉴스타파는 저널리즘적 지향과 생존 문제가 맞닿아있다”고 최 피디는 말했다.

&lt;뉴스타파&gt; 10년을 맞아 최승호 피디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뉴스타파> 10년을 맞아 최승호 피디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의 배우자 재산 관련 보도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검찰총장 청문회 당시 검증 보도로 후원회원들이 급감했던 건 잘 알려진 사실. 독자들의 ‘정파적 기사 소비’를 탓하는 목소리도 많은 시대다. 최 피디는 “때로는 뉴스에 불만을 품고 후원자들이 떨어져나갔지만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대로 보도를 한다는 점이 이해가 되면 결국 독자는 돌아오더라. 언론사로서 생존과 신뢰, 보도의 진실성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난 10년간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진실을 확신한다는 건 수많은 크로스체크와 자료 검증 등 오랜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이라며 “지금처럼 가짜 정보가 많은 때일수록 더욱, 느리더라도 사회적으로 공유 가치가 있는 지식자산을 찾아내는 것이 언론의 덕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진실한 보도와 독자에 대한 믿음, 한국 언론계에 지금처럼 간절한 때는 없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길에 자꾸 맴돌았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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