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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전쟁 때 얻은 아버지의 무릎 신경통 사연에 웁니다”

등록 2022-02-24 23:00수정 2022-02-25 02:31

[기억합니다] 고 형선기님 그리는 아들 형광석씨의 글
필자의 부모 형선기·정기순씨 부부의 1955년 10월 결혼 때 모습. 형광석 주주통신원 제공
필자의 부모 형선기·정기순씨 부부의 1955년 10월 결혼 때 모습. 형광석 주주통신원 제공

한여름에도 반바지는 내게 입을 수 없는 옷이다 . 찬바람이 불면 무릎이 시리다 . 선친의 고통이 떠오른다 .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아버지 , 청재 형선기 선생은 일평생 사시사철 날마다 무릎이 시려서 남모르게 신음하셨다 . 겨울에는 더 그러셨다 . 스물아홉에 홀로 되어 남매를 키운 할머니는 장남이자 외아들을 위해 자주 소의 무릎뼈를 고아 곰국을 끓이셨다 . 효심이 극진했던 선친은 그런 할머니께 늘 송구스러워하셨다 . 모두 다 ' 무릎 신경통 ' 때문이라고 말씀했다 . 어떤 연유로 그런 신병을 얻으셨을까 ?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1년 전인 2011년 팔순 기념으로 펴낸 자서전 <보랏빛 길목에 서서–청재 형선기 80년을 걷다>를 다시 펼친다.

청재 선생은 1951 년 9 월과 12 월에 각각 ‘ 육군 하사관학교 ’ 와 ‘ 육군경리학교 경리하사관 후보생 과정 ’ 을 수료했다 . 육군하사관학교 수료증 과 육군경리학교 수료증이 유품으로 남아있다 .

1951 년 5 월 1 일 , 19살 소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 ‘3 월 17 일 , 전남 화순군에서 수복 및 빨치산 토벌 작전을 수행하던 국군이 빨치산 혐의로 마을의 청장년 남자 15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 2009년 9월17일) 우연히도 첩첩산중으로 피란을 가는 바람에 겨우 화를 면했구나 . 1 년 전 발발한 6·25전쟁 은 한창이다 . 오늘 홀어머니와 유복자인 여동생과 헤어져 군대에 가야 한다 . 신생 독립국가 대한민국이 내린 명령이다 . 목적지는 제주도 육군 제 1 훈련소 ( 별칭 모슬포 훈련소 ) 인데 , 집결지는 어디이고 , 제주도로 가는 배는 어디서 타지? ’

그뒤 선친이 남긴 기록에는 ‘1951 년 5 월 16 일 제주도 육군 제 1 훈련소 입대 ’ 라고 적혀 있다 . 전남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집을 나서서 제주도에 도착하기까지 보름이 걸린 셈이다 . ‘1951 년 하사학교 입대 ’로 기록했다 . 제 6 기 육군하사관학교의 수료증 수여일은 1951 년 9 월 15 일이었고 계급은 하사이다 . 이어 ‘1951 년 10 월 21 일 육군경리학교 입학 ’ . 제 8 기 경리하사관 후보생의 수료일은 1951 년 12 월 30 일이었다 . 훈련 기간이 70 일 정도였던 셈이다 .

2011년 팔순 때 펴낸 필자의 선친 형선기씨의 자서전 &lt;보랏빛 길목에 서서&gt;의 표지. 형광석 주주통신원 제공
2011년 팔순 때 펴낸 필자의 선친 형선기씨의 자서전 <보랏빛 길목에 서서>의 표지. 형광석 주주통신원 제공

“ 나는 1951 년 5 월에 군에 입대하였다 . 열아홉의 나이였다 .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았다 . 겨울로 기억된다 . 제주도에도 눈이 많이 내렸었다 . 팬티 바람으로 눈 위에서 무릎 꿇린 채로 여러 시간 단체 기합을 받았다 . 겨우 일어섰으나 무릎에는 두꺼운 얼음덩이가 붙었었다 . 나는 그 뒤로 계속 무릎이 시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무릎 통증으로 내장이 뒤집히는 기분이다 . 이제는 진통제의 약발도 듣지 않는다 . 설상가상으로 약물 부작용도 심해서 온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 그게 바로 군대생활이 내게 준 처절한 선물이었다 .”

선친은 ‘겨울 제주도’라고 했으니 육군경리학교 훈련 때 무릎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 ‘1952 년 1 월 2 일 육군본부 재무감실 전속 ’, 그 전속은 육군경리학교를 수료한 직후였다 . ‘1954 년 5 월 16 일 광주육군병원 재무계에서 제대 ’, 그 병원의 현재 이름은 국군함평병원이다 . 병적 증명서에는 1954 년 5 월 1 일 가사 사정으로 전역했다고 나온다 . 계급은 병장이다 . 반면 , 육군하사관학교 수료증에 나오는 계급은 ‘ 육군 하사 ’ 이다 . 왜 , 이렇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

2006년 어머니 칠순 때 모인 4남매와 손주들 가족사진. 맨왼쪽이 필자이자 맏아들 형광석씨, 앞줄 왼쪽 세번째부터 어머니 정기순·아버지 형선기씨, 맨오른쪽이 외동딸 형선아씨 등이다. 형광석 주주통신원 제공
2006년 어머니 칠순 때 모인 4남매와 손주들 가족사진. 맨왼쪽이 필자이자 맏아들 형광석씨, 앞줄 왼쪽 세번째부터 어머니 정기순·아버지 형선기씨, 맨오른쪽이 외동딸 형선아씨 등이다. 형광석 주주통신원 제공

청재 선생은 1932 년 3 월 14 일 ( 음력 ) 이 세상에 오셨다가 2012 년 12 월 27 일 정오무렵 영원한 고향, 하늘로 돌아가셨다 . 아내 정기순과 결혼해 4남매를 두었다. 선친을 닮지 못한 불초자식인 나와 동생들은 기억한다 . 무릎 신경통으로 일평생 신음하신 우리 아버지 ! 선량한 한 인간이 6·25 동족상잔으로 평생 감내해야 했던 감춰진 고통의 표상이라고 .

신병으로 힘겨움에도 하늘을 공경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경천애인 을 실천하신 선친의 일생이 파노라마로 눈 앞을 스쳐간다 . 가끔 부르시던 옛노래 ‘유정천리’ 의 전주가 들리는듯 하다 . ‘ 가련다 ~ 떠나련다 ~ 어린 아들 손을 잡고~ ’. 바로 전쟁 때 헤어진 가족의 애환을 그린 노래로 1959년 나와 지금도 옛 가요 프로그램에서 종종 불린다. 선친의 목소리는 참으로 맑으셨는데….

나주/형광석 주주통신원

원고료를 드립니다~ &lt;한겨레&gt;가 어언 34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원고료를 드립니다~ <한겨레>가 어언 34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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