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학회가 17일 ‘공직후보자 검증보도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 세미나를 열고 있다. 줌 영상 갈무리
<한겨레>는 지난 1월17일치 신문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내용’을 보도하며 “법원의 판단을 1차 보도 기준으로 삼아 제한적으로 전하되 사적 대화 등도 배제하며 유권자의 알 권리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는 발언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알림을 내보냈다.
사실 고위공직자의 검증, 특히 사생활 영역에 대해 한국 언론계에 ‘합의된’ 기준은 없다. ‘7시간 통화 녹음’의 경우, 법원마다 방송가능범위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도 했다. 윤석열 새 정부가 5월 출범하면 고위공직자 검증보도가 잇따를 전망인데, 이와 관련해 언론사별 검증 기준을 정해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언론학계에서 나왔다.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선 가칭 ‘공직자 표절 검증 심의위원회’를 언론계에 구성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국언론법학회(회장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연 ‘공직후보자 검증보도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 세미나에서 ‘공인과 사생활’ 주제 발표를 맡은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주체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되든, 윤석열 당선자가 얼마 전 밝혔듯 검·경으로 넘어가든 인사 검증이 100% 완벽할 순 없기에 언론의 보도는 아주 중요하다. 다만 언론 보도는 검증의 ‘주체’가 아니라 보완하고 검증을 확인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법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생활의 영역 구분. 이재진 교수 발제문 갈무리
대법원은 2013년 사생활 보도의 기준으로 △정당한 공적 관심사 △공익목적 △정당한 방법으로 보도 등 세가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인지 서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생활(인격)을 공적·사회적·사사(私事)적·내밀한 영역으로 구분하는 독일법 등에선 내밀한 영역은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사사적 영역과 내밀한 영역의 구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번 대선을 거치며 보도 기준뿐 아니라 보도 방식에 대한 우려 또한 큰 상황이다. 이 교수는 “언론이 검증에 따르는 증거를 제시 못 한 채 국회 내 검증 과정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에 공개돼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며 “공적 중요성에 근거해 비판적 기사를 못 쓰게 된다면 후보에 대한 단순 흠집내기에 불과하고 파수견이 아니라 단순히 공격견이나 사냥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속보 경쟁이 더 치열해진 포털 환경, 지지 세력에 따라 같은 기사를 놓고도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검증보도에도 ‘따옴표 저널리즘’이 대거 쓰이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또한 “이번 대선에서 폭로 받아쓰기, 전문성을 검증할 전문성 부족, 선택적 검증보도 같은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폭로 받아쓰기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주장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정작 중요한 후보 자질보다 다른 쪽에 관심이 쏠리게 하는 식으로 프레임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언론사마다 고위공직자 검증 기준을 정하고 공개할 것 △사생활의 경우 공적 중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기사화하며 그 기준과 일치하지 않거나 애매한 경우엔 회사 차원에서 결정하며 문제가 발생할 때 전적으로 회사가 책임을 질 것 △사생활 검증을 ‘속보 경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 △의혹 제기 보도의 경우 최대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토대로 할 것 △명예훼손의 경우 진실성과 공익성이 면책사유가 되나 사생활의 경우에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것 등을 제시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선 언론사별 특성을 살리더라도 언론계 공통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고, 이런 기준 마련에 학계와 언론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여럿으로부터 나왔다. 반면 언론중재위 심의실장인 양재규 변호사는 “사생활의 범위보다 보도 목적, 방식이 정당했는지, 최소침해원칙을 지켰는지 등이 언론보도에선 더 중요하다”며 현실적으로 ‘사생활 보도’에 대한 일반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도 문제지만 ‘사생활’이라는 이유가 검증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남용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 또한 귀기울일만 하다.
이날 또 하나의 주제는 검증보도의 ‘단골 메뉴’인 논문 등 표절 문제였다. ‘표절과 연구윤리’를 주제로 발표한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공직자 표절 검증의 가장 큰 문제는 표절 이슈를 정치권에서는 진영논리로 , 언론에서는 진지함과 엄밀성을 담보하지 않은 채 선정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연구윤리에 대한 피로감이나 거부감을 유발하는 것”이라며 언론이 표절 검증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에서 흔히 카피킬러 같은 프로그램을 쓰는데, 유사율이 10%면 표절이 아니고 50% 이상이면 표절, 이렇게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며 출처 표시, 고의성, 공정한 활용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표절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해당 논문의 발표 당시 가이드라인이나 정부와 학계의 표절 판단 가이드라인과도 상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짚었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연구윤리 전문가·저작권법 전문가를 포함해 언론계 내 가칭 ‘공직자 표절 검증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표절 여부를 발표하기 전 최종적으로 심의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학계 기준의 표절 판단엔 몇 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현실과의 괴리를 좁힐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김영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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