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오후 한·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문화방송>(MBC)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 탑승에서 배제한 대통령실의 행태를 두고 언론 통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화방송이 “언론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데 이어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단체도 지난 14일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을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1호기 탑승 배제 논란이 여전한데도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과 사과, 피해 회복 등의 조처를 내놓아야 할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오히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비공개하는 등 언론 취재를 지속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언론계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 만큼, 진보와 보수를 떠나 언론 스스로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국제공항에서 14일 오후(현지시각) 민항기를 탄 엠비씨 취재진들이 짐을 찾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발리/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문화방송 취재진에 대한 1호기 탑승 배제 논란이 불거지자 ‘취재 편의’라는 개념을 들어 1호기 탑승을 취재진이 대가없이 누리는 혜택인 것처럼 설명했다.
먼저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이번 취재 제한 논란에 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이 많은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 여러분들도 그렇고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서는 취재 편의를 제공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게 옳으냐 그런 고민 속에서 취한 조치”라며 “취재 제한은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중앙 풀 기자단 49개사와 거의 모든 언론 현업단체, 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협회 등 언론 사용자 단체는 “출입기자단은 관련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전용기에 탑승한다”며 즉각 반박했다. 1호기라는 ‘공적 공간’에 대한 취재 필요성 때문에 합당한 비용을 내고 탑승하는 것이지,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베푸는 ‘시혜’를 누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한겨레>는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스페인 순방(3박5일) 동행 취재 때 1인당 920여만원, 9월 영국-미국-캐나다 순방(5박7일) 때 1인당 2650여만원의 비용을 대통령실에 냈다. 여기에는 왕복 항공료와 여행자보험, 숙박비, 프레스센터 임차료, 인터넷 사용료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1호기를 이용한 다른 언론사가 부담한 금액도 비슷한 수준이다.
취재 제한이 아니라는 대통령실 주장도 실제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앞서 말한 것처럼 1호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하나의 공적 공간이자 그 자체로 취재 현장이다. 회의실은 물론 간단한 간담회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스페인을 방문한 뒤 돌아오는 길에도 이 공간에서 기자 간담회가 열린 바 있다.
문화방송은 11일 대통령실의 1호기 탑승 배제에 맞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히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이번 대통령실의 조치로 엠비시(MBC)는 국가 원수의 외교 활동에 대한 접근권을 부분적으로 봉쇄당했다”는 점을 꼽았다.
문화방송 취재진에 대한 1호기 탑승 배제는 ‘특정 비판 언론’에 대한 ‘정치 권력’의 ‘일방적인 취재 제한’ 행태라는 점이 핵심이다. 그런데도 여당 정치인은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는 과거 사례를 끌어오거나 문화방송의 윤 대통령 비속어 보도를 ‘가짜뉴스’라는 반 언론적 수사로 매도함으로써 대통령실의 취재 제한 행태를 정당화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때마다 몇몇 언론은 사실관계 확인이나 검증 없이 무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여야의 주장을 각각 큰따옴표로 인용하며 이번 사태를 ‘정쟁’으로 다뤘다.
예컨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 직후 문화방송 취재진에 대한 1호기 탑승 배제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출입기자의 출입을 금지시킨 적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기자실을 대못질한 사례도 있다”며 “이런 게 언론 탄압이고 통제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의 주장은 곧바로 일부 언론을 통해 “노무현땐 기자실 대못질…” 등 제목으로 보도됐다.
정 위원장이 말한 ‘기자실 대못질’ 주장은 참여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추진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서 출발한다. 이는 정부 각 부처별 기자실을 합동브리핑센터로 통폐합하고 전자브리핑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으로 특정 비판 언론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언론사 기자단과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사안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번 1호기 탑승 배제 건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의 출입을 금지시킨 적’은 여러 차례였다. 남북 관계의 전환기를 맞아 일부 언론의 엠바고(보도시점 유예) 및 오프더레코드(비보도) 파기 사례가 여럿 발생했다. 이에 출입기자단이 자체적으로 출입 정지 등 징계를 결정할 때가 많았는데, 단 한 차례 기자단이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출입기자의 출입을 정지시킨 적이 있었다. 2000년 6월20일 청와대가 <중앙일보>의 ‘북, 노동당 규약 개정 약속’ 기사와 관련해 해당 언론사 기자의 출입을 무기한 정지시킨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와 언론사 사장단이 비보도를 전제로 나눈 이야기를, 그것도 부정확하게 기사화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 제한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5일만에 출입정지 해제를 발표했다.
정 위원장이 이 사례를 소환한 것이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과거 정부가 섣불리 출입정지 조처를 내린 뒤 언론계의 비판 여론을 받아들여 닷새만에 철회한 22년 전의 일이 현재 진행형인 문화방송 취재진 1호기 탑승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 대한 취재 제한 논란이 커지자 이를 ‘가짜뉴스’ 탓으로 돌리는 여권 인사의 일방적 주장도 여러 언론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비속어 논란을 문화방송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도한 148개 언론사라면 결코 곧이 곧대로 인용할 수 없는 발언인데도, ‘MBC’와 ‘가짜뉴스’를 연결하는 제목의 여당발 기사는 연일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15일 “문화방송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 건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나눌 문제가 아닌데도 일부 언론은 대통령실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정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다루고 있다”며 “이는 정치 권력에 의한 언론 자유 탄압이라는 본질을 흐리는 보도 행태”라고 짚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특정 비판 언론을 배제한다는 것은 곧 어떤 언론이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언론에 대한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며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떠나 언론의 공동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그 수위는 지금보다 훨씬 단호하게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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