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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어 보도에 “악의” 선언…윤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

등록 2022-11-21 07:00수정 2022-11-21 13:29

MBC 겨냥 “가짜뉴스, 이간질, 악의적” ‘말폭탄’
보도 악의적이라며 구체적 근거는 제시 못 해
보수 언론학자도 윤 대응 “극히 부적절” 지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비속어 발언을 보도한 <문화방송>(MBC)을 겨냥해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악의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문화방송 보도가 “악의적”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거듭 문화방송을 압박하고 나섰다. 여당에서는 문화방송에 대한 광고 중단 주장에, 급기야 문화방송 기자 개인의 ‘슬리퍼’ 차림에 대한 공격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윤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국면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언론관을 살펴봤다.

“가짜뉴스”는 반 언론적 수사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오전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이뤄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문화방송 전용기 탑승 배제’ 등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변했다.

다만 엠비시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그런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그런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저는 생각하고. 언론도 입법·사법·행정과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4개의 기둥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법부가 사실과 다른 그런 증거를 조작하고 해서 만약에 어떤 판결을 했다고 할 때 국민 여러분께서 사법부는 독립기관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문제 삼으면 안된다고 하시지 않을 거 아니잖습니까. 저는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국민들의 안전보장과 관련된 것일 때는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자신의 비속어에서 비롯한 논란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9월26일에는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나머지 것들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lt;문화방송&gt;(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 보도 영상. 문화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문화방송>(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 보도 영상. 문화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로부터 약 두 달 만에 윤 대통령은 문화방송의 비속어 보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실과 다른 보도”를 넘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들고 나온 것이다. 언론학자들은 윤 대통령이 문화방송의 비속어 보도를 겨냥해 구체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실과 다른 보도’라고 단정하는 태도도 문제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다. 다만 기성 언론의 ‘부실한 보도’나 ‘단순 오보’ 등은 에스엔에스(SNS),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사전적 의미의 가짜뉴스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가짜뉴스라는 용어에 대한 오·남용이 결국 뉴스의 신뢰도까지 떨어뜨린다는 성찰 아래 최근에는 이를 ‘허위조작정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가 2019년 6월 이른바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학계·언론시민단체·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꾸린 ‘허위조작정보 자율규제 협의체’(이후 전문가회의로 명칭 변경)는 이듬해 보고서를 내면서 가장 먼저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가짜뉴스 대신 허위조작정보를 써야 한다는 취지였다. 법무부도 2018년 10월 “‘알 권리 교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며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 표명’과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 제기’ 등은 허위조작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계와 정부에서 이미 퇴출한 가짜뉴스라는 문제적 표현을 굳이 끄집어낸 것이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학자로 꼽히는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 등의 이런 대응과 관련해 “극히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가짜뉴스라고 할 때에는 ‘사실관계가 틀렸을뿐더러 거기에 악의가 포함돼 있을 경우’ 등 검증 기준을 필요로 한다”며 “현 정부가 (엠비시 보도를) 불편한 보도라든가 국익을 훼손하는 보도라고 여길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건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런 태도는 곧 ‘너희는 더 이상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며 낙인을 찍는 것”이라며 “이는 나중에 엠비시를 넘어 모든 언론을 대상으로 ‘우리는 언론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확장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여권과 가까운 또 다른 보수 언론학자도 “가짜뉴스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라는 점을 짚었다. 그는 “엠비시의 윤 대통령 비속어 보도는 국익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면서도 “특정 언론 보도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하면 또 다른 쪽에는 ‘진짜뉴스’가 있다는 건데, 그렇게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근거 빈약한 “악의적 행태” 주장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문화방송 비속어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여기에 “악의적 행태”라는 표현까지 보탰다. 비판 언론에 대한 반박 수준을 넘어 노골적인 반감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비판 보도 혹은 일부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한 언론사라면 대화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악의적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곳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짜뉴스는 배제와 근절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방송의 비속어 보도 태도가 ‘악의적이었다’라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악의적 행태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힐 책임은 공인인 윤 대통령한테 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악의의 심판자’를 자처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18일 출근길 문답에서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윤 대통령의 등 뒤에서 “뭐가 악의적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그 대답은 대통령실이 대신 내놓았다. 대통령실은 18일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 이름으로 낸 서면브리핑에서 “음성 전문가도 확인하기 힘든 말을 자막으로 만들어 무한 반복했고,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 국회 앞에 미국이란 말을 괄호 안에 넣어 미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쓴 것처럼 거짓 방송을 했다”며 10가지 이유를 들어 “이게 악의적”이라고 주장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속어 보도와 별도로 김건희 여사의 ‘논문표절 의혹’을 다룬 <피디(PD)수첩>이 방송에서 김 여사의 대역을 쓰고 알리지 않은 점, 2008년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됐다. 이는 윤 대통령이 ‘악의적’이라고 주장한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행태’와 관련이 없는데도 대통령실은 ‘악의’의 근거로 끌어온 것이다.

비속어 보도와 관련이 있다 할지라도 문화방송의 악의를 입증하는 근거라기보다, 일방적 주장에 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 국회 앞에 미국이란 말을 괄호 안에 넣어 미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쓴 것처럼 거짓 방송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언론의 일반적 관행에 해당한다. 앞서 문화방송은 지난 9월22일 관련 보도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아 내보냈다.

물론 저널리즘 원칙에 비춰볼 때 가장 바람직한 표기 방식은 발언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나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 정도의 예외는 인정된다. 당장 <동아일보>만 해도 지난해 12월22일치 신문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인터뷰 기사(“영부인이란 말 안썼으면…아내, 선거중 등판계획 처음부터 없었다”)를 내보냈는데, 20차례가 넘게 괄호를 활용해 발언 내용을 보충했다. 윤 대통령이 이 기사가 나간 뒤 ‘하지도 않은 말을 괄호 안에 넣어 거짓 보도를 했다’며 이를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선대위 구성이 이렇게 늦어질 줄 몰랐다. 집권 후 미래에 대한 청사진 제시가 늦어지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두 번째는 더불어민주당의 네거티브 공격에 대해 제대로 대응이 안 됐다. 우린 (민주당 이재명 후보) 신상에 대해 네거티브 (공격을) 할 생각은 없다.”

“‘위드 코로나’는 간단한 결정이 아니다. 과학방역이 되려면 데이터에 근거해 판단하고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그런 기반이 전혀 안 돼 있다. 코로나19로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도 후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대통령실은 문화방송 취재진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서도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 등 회신 내용 전체를 소개하지 않았다며, 이를 ‘악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당시 국무부는 ‘한국 공직자의 발언은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고 답변했다”며 “‘한국과의 관계는 끈끈하다’는 부수적인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악의적 보도로 몰아가는 것, 이게 헌법 수호인가”라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실의 18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방송에 대한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적대적 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비속어 발언과 관련해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제대로 밝히거나 사과하지 않고, 이를 처음 보도한 방송사를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배제하는 태도를 취하자 같은 당 내에서도 “왜 자꾸 논란을 키우는 건지 안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 전 의원은 19일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의 말대로 엠비시의 보도가 정말로 ‘증거를 조작한 악의적인 가짜뉴스’였고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보장을 해치고 헌법을 위한반 행위’였다면 이 심각한 중죄에 비해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는 너무나 가벼운 벌 아니겠나”라고 짚었다. 또 그는 “그러나 이 일이 정말 그렇게까지 할 일인지, 계속 확대 재생산해서 논란을 이어갈 일인지 대통령부터 차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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