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등 언론 현업단체는 지난 5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어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법 처리를 국회에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영방송 사장을 누가 어떻게 뽑느냐에 관한 공영방송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이사회 구성에 여야가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줄이고, 사장 후보 추천 권한을 외부에 개방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바꾸자는 취지다.
공영방송 관련 법에 관한 여야 간 입장차는 여전하다. 법안 처리를 주도하고 있는 야당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더 이상 관련 법 개정을 늦출 수 없다는 태도인 반면, 여당은 이를 ‘친 민주당, 친 민주노총 언론노조’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법안 논의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남은 입법 절차도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관련 법의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를 열어 야당 단독으로 공영방송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 소속 정청래 과방위원장의 일방적인 회의 진행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공영방송 관련 법은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교육방송공사법,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 등 4개의 개별 법으로 구성된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교육방송의 이사회 구성을 바꾸려면 각각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교육방송공사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정안에는 공영방송 이사의 임명제청권(한국방송)을 방통위에 부여하는 내용 등도 담겼는데, 그러려면 방통위법 개정도 불가피하다.
공영방송 관련 법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를 21명으로 확대하고, 각 추천권자를 법으로 정하도록 했다. 지금의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지닌 가장 중대한 결함은 ‘거대 양당이 법적 근거도 없이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해왔다는 점이 꼽힌다. 이는 1990년 방통위의 전신인 방송위원회의 위원 추천 방식을 공영방송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여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수를 교대하며 공영방송 이사를 6 대 3(문화방송·교육방송) 혹은 7 대 4(한국방송) 비율로 밀어 넣었다. 정치권의 추천을 받은 이사들은 공영방송 사장 후보를 추천(혹은 임명 제청)하는 등 꽤나 중요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정권 교체기마다 공영방송 안팎에서 ‘방송 장악’, ‘낙하산 사장’ 논란이 나온 것은 이런 지배구조 구조 탓이 컸다.
이에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후견주의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현재의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그 핵심이 이사회 구조의 개혁이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 다양성과 전문성, 정치적 독립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입김 최소화를 꾀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각 공영방송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면서 국회의 이사 추천권을 법으로 보장하되, 그 수를 5명으로 크게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의 이사 추천권은 정당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토록 했다. 각 정당은 특정 성별을 1명 이상 포함시켜야 한다.
남은 16명의 이사 추천권은 방통위가 선정하는 방송·미디어 학회(6명), 직능단체(6명), 각 공영방송사 시청자위원회(4명) 등이 갖는다. 학회에 추천권을 주는 것은 방송·미디어 전문가 집단의 대표성을 이사회 구성에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방송기자연합회·한국피디(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직능단체의 추천권은 기자·피디·기술인 등 방송 직종의 대표성, 시청자위원회는 시청자 대표성을 감안했다. 국회의 추천권을 아예 없애지 않은 것도 대의제에 따라 국민의 뜻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결과다.
그다음으로 공영방송 사장 후보 추천에도 정치권의 영향력이 개입될 수 없도록 했다.
공개 모집을 거쳐 성별·연령·지역을 고려해 꾸린 100명 규모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각 방송사 사장 후보를 복수(3인 이내)로 추천해서 이사회에 올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각 이사회는 재적 이사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특별다수제)을 거쳐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 뒤 대통령한테 임명을 제청해야 한다. 사장 후보자 심사와 압축은 현재 각 공영방송 이사회가 맡고 있는데, 이를 국민 추천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공영방송 관련 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친 민주당, 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방송 장악 시도’인 만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여당의 기본적 태도다.
공영방송 관련 법이 국회 과방위 문턱을 넘은 2일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은 공적 책무를 짓밟고 민주당 나팔수로 전락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노영방송’ 체제를 더 견고하게 하려는 개악된 방송법을 기어이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아이시티(ICT)미디어진흥특위도 성명서를 통해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대로라면 케이비에스(KBS), 엠비시(MBC), 이비에스(EBS) 등 공영방송은 이사가 무려 21명에 달하는 기형적 지배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중 대다수가 친 민주당·친 민노총 성향을 가진 인사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성중 의원(왼쪽 둘째) 등 국민의힘 소속 과방위원들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뒷모습)의 회의 진행 방식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세우는 ‘친 민주당, 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방송 장악 시도’ 주장은 검증을 필요로 한다. 먼저 개정안에 따른 공영방송 이사 21명 중 5명은 국회에서 여야가 추천권을 행사한다. 이들을 제외하면 16명이 남는다.
그중 ‘방통위가 선정하는 방송·미디어 학회’에서 추천하는 6명은 언론노조 성향일 수 없다. 지금의 방통위는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위원장 체제이니 그렇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한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8월에 끝난다. 한국방송과 방문진(문화방송) 이사회의 구성을 바꿔야 할 시기는 그 뒤에 찾아온다. 여야가 각각 3 대 2 구도로 방통위원을 추천하는 구조에 비춰볼 때, 내년 8월 이후의 방통위나 방통위 선정 학회가 ‘친 민주당, 친 언론노조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피디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직능단체가 각 2명씩 총 6명의 추천권을 갖도록 하고 있는데, 이들 단체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언론노조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예컨대 방송기자연합회에는 공영방송 기자는 물론 민영방송과 일부 종합편성채널 기자도 속해 있다. 피디연합회와 각 방송사 기술직군이 속한 방송기술인연합회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 언론노조가 아닌 다른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도 많다.
물론 방송기자연합회와 피디연합회 등이 문화방송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등 언론탄압 논란이 불거졌을 때 언론노조와 함께 연대성명을 내거나 공동 기자회견을 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언론노조가 주요하게 목소리를 냈던 포털 뉴스서비스 규제 법안이나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투쟁 당시 각 직능단체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사안에 따라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방송기술인연합회가 매년 주최하는 국내 최대 방송기술 전시회 코바(KOBA)도 언론노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지막으로 4명의 추천권을 갖는 각 공영방송사 시청자위원회도 곧바로 ‘친 언론노조’로 연결짓기는 무리다. 현재 공영방송의 시청자위원을 각 방송사 사장이 임명하는 만큼, 이들이 경영진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립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주장을 하려면 시청자위원회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를 기반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순서다.
문제는 국민의힘 주장이 구체적 근거나 합리적 대안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청자위원회만 해도 방송법에 따라 각계의 시청자를 대표하는 단체들의 추천을 받아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추천 단체에는 학부모단체, 소비자보호단체, 여성단체, 청소년단체, 변호사단체, 언론 관련 시민·학술단체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시청자위원회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이 기구를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꾸릴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거나, 시청자위원회가 아닌 다른 단체에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배분해야 한다든가 하는 주장을 내놓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방송 시청자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주장과 관련해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한국방송 시청자위원) 선정위원회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청자위원 선정을 위해 부사장(위원장), 편성본부장, 시청자센터장 그리고 티브이, 보도, 라디오 편성위원회 책임자 각 1인 및 실무자 대표 각 1인 등 사내 각 부문의 다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고 노조는 여기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며 “또다시 ‘학회, 시청자위원회, 방송단체 관계인들이 민주노총에 장악되어 있다’는 망언을 되풀이할 경우 그때는 결코 좌시하지 않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업 언론단체도 국민의힘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기자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피디(PD)연합회 등 6개 현업 언론단체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영방송 관련 법에 대한 여당의 태도와 관련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법안 논의 과정 내내, 밑도 끝도 없이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 장악 법안’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만 무한 반복하고 있다”며 “모두 사실과 다른 거짓 주장으로 국민들을 오도하려는 정치 선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현업 언론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종하 방송기술인연합회장은 “35년째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비롯해 방송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친언론노조, 친민주당 프레임으로 언급되고 있어서 굉장히 불쾌하다”며 “35년간 어떤 단체가 유지된다는 건 조직의 다양성 때문에 가능한 만큼, 우리를 낙인찍는 표현을 멈춰달라”고 전했다.
최지원 피디연합회장은 “우리는 국내 최대의 제작자 모임으로 언론노조나 민주당이 우리와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면 얼마든지 입장을 달리할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 단체가 친민주당, 친언론노조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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