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 피랍·대통령기 회항 등 보도자제 요청
정치적 유불리 따라 언론 길들이기에 악용
정치적 유불리 따라 언론 길들이기에 악용
‘원전’(2009년 12월)이 아니라 이번엔 ‘유전’이다. 13일 아랍에미리트 현지에서 다시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선 이명박 대통령은 대규모 유전개발 참여 사실을 처음 공개하며 ‘극적 효과’를 누렸다. 1년 3개월 전처럼 어떤 언론도 기자회견에 앞서 해당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덕이다. ‘국익’의 이름으로 남발되는 현 정부의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유예)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언론을 길들이고 있다는 지적도 되풀이되고 있다.
출국 3일 전이던 지난 9일 오후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출입기자단을 찾아 포괄적 엠바고를 요청했다. 유전개발 참여 양해각서 체결 사실을 이 대통령의 현지 기자회견 때(한국시각 13일 저녁 8시)까지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최종 서명 전에 알려질 경우 합의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 협상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한겨레>를 포함한 모든 언론사가 청와대의 요청을 수용했다. 한겨레는 “청와대가 요청한 엠바고 사안에 관련된 내용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에의 직결’ 여부를 판단할 수 없어 일단 수용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전작권 전환 연기 관련 엠바고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듯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앞으로도 거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홍 수석은 ‘대통령 전용기 회항사태’(성남공항에서 이륙한 전용기가 기체 이상으로 1시간40여분 만에 인천공항으로 회항)를 두고도 아랍에미리트 도착 때까지 엠바고를 요구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미리 보도하면 정말 유전개발 협상이 무산될 상황이었는진 알 수 없으나, 현 정부 들어 유리한 사안의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불리한 이슈를 통제하기 위해 엠바고를 남발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사례는 무수하다. 청와대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건에 엠바고를 걸어 이 대통령의 생중계 발표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2008년 미국 순방 중이던 이 대통령이 현지 기업인 간담회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사실을 정부 발표보다 먼저 공개해 논란을 빚은 사실이나, 2008년 한-일 독도 분쟁을 둘러싼 대통령 발언(“일본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면 독도 문제가 많이 달라질 것”)도 엠바고 사안이었다. 지난해 한-미 정상의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협상 사실에도 보도유예를 요청했다.
정부가 정권 유불리에 따라 엠바고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보도를 둘러싼 양극단적 대응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1차 구출작전 실패 소식을 기사화한 언론사엔 청와대와 전 정부 부처가 동참해 최고 수위의 취재제한 조처를 가하면서도, ‘작전성공 홍보’엔 ‘군사기밀 누설’ 논란을 불사하면서까지 열을 올렸다. 2009년 이 대통령이 야심차게 밝힌 ‘북핵 그랜드바겐’을 두곤 국제사회와 논의중인 사안을 성과를 자랑하느라 스스로 국제적 엠바고를 깼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엠바고 남발이 거듭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청와대가 엠바고란 방식으로 의제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면서 언론의 감시 기능까지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우 교수는 “정권은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관리·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게 마련”이라며 “엠바고 수용 여부를 판단하는 언론이 별다른 저항 없이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청와대의 ‘8월8일 개각’ 하마평 보도와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인 언론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와 ‘특전사 세트 파병’ 논란의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됐다.
<조선일보>는 14일 기사 (‘13시간 동안 국민은 몰랐다’)에서 “청와대는 그간 포괄적 엠바고 요청을 자주 해왔다”며 “앞으로 엠바고 요청에 정부 관계자들이나 기자들 편의를 위한 측면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수용 여부를 엄격하게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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