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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뽑는 이사부터 잘 뽑아라”

등록 2012-07-20 20:04수정 2012-07-20 22:39

‘공정방송 회복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170일 동안 파업을 벌여온 <문화방송>(MBC) 노조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옥 D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무 복귀를 밝히는 집행부의 ‘대국민 선언문’을 듣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공정방송 회복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170일 동안 파업을 벌여온 <문화방송>(MBC) 노조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옥 D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무 복귀를 밝히는 집행부의 ‘대국민 선언문’을 듣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방송 정상화 첫 단추는 새달 초 방문진 이사 교체
현재 여당이 9명중 6명 추천 여야 몫 공평하게 나눠
이사들끼리 견제하게 해야 낙하산 사장도 막을 수 있어
해고 16명, 징계 270여명.

전국언론노조가 20일 잠정 집계한 이명박 정부 4년 반의 ‘언론 성적표’다. 한때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이끌던 최승호 피디뿐만 아니라 <와이티엔> 돌발영상의 주인공 노종면 기자 등 스타급 언론인도 해고자가 됐다.

프로그램으로 보자면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큰 타격을 입었다. 피디수첩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언론 통제, 자유 언론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피디수첩은 1990년 첫 전파를 쏘았다. 1980년대 후반 방송사 노조의 설립과 방송 민주화 운동으로 일어난 공정방송에 대한 요구가 문화방송에선 피디수첩으로 모아졌다.

정부기관의 출입처를 터전 삼아 정치·경제 엘리트를 취재하던 전통적 뉴스 저널리즘과 달리 피디수첩은 현장에 들어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의 신문·방송 뉴스가 사건의 단면을 잘라 보여줬다면, 피디저널리즘은 사건(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내러티브 방식으로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피디수첩은 국내에서 본격적인 피디저널리즘의 막을 연다. 이어 1991년 <에스비에스> 개막과 함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등장했고, 한때 폐지됐던 <한국방송>의 ‘추적60분’이 되살아났다.

현재 피디수첩은 지난 1월 이후 방송이 중단된 상태다. 파업 기간 피디 10명 중 1명은 정직을 당하고 5명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파업 직후인 지난 18일 추가로 1명이 다른 국·실로 전보되면서 기존 제작진은 3명만 남은 상황이다. 피디수첩 관계자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8월이나 돼야 방송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파업 대체인력으로) 새로 배정된 시용피디 3명과 함께 같이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문화방송 노조 복귀 “아쉽다” “잘했다”

지난 18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가 ‘공영방송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을 접고 복귀함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도 분기점을 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반년밖에 남지 않아 얼핏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정부 대 언론인의 싸움의 불확실성은 크다.

이번 정부 들어 <부산일보>를 제외하면 모두 정부가 사장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영방송이나 국가 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그리고 공기업 ‘한국전력’이 대주주인 <와이티엔>에서 노사 갈등이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즉,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언론사에서 방송 장악, 편집권 독립 등의 논란이 집중된 것이다.

특히 언론에 대한 개입이 감사원을 비롯한 행정기구까지 나서고 검찰 등 물리력을 동원하는 점에선 군사정부 시대로 퇴행하는 모습조차 보인다.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를 다룬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체포는 낯선 풍경이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이번 정부 민간인 사찰 등이 발생한 걸 보면, 공영방송이라고 예외와 배려의 영역이 아니란 걸 보여준 거죠. 방송은 1987년 체제 이후에 (권력의 통치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었는데, 더이상 예외적이지 않은 것을 드러낸 셈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화방송 노조는 170일 파업을 이끌었다. 시비에스(CBS) 노조가 2000~2001년 재단이사회 개혁을 요구하며 267일 파업을 벌인 이후 최장기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일단 이번 문화방송 파업이 공정방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넓혔고 정치권의 잠정 합의를 이끌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집권 정부나 미래 권력에 결코 방송 장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겼다는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의 말이다.

“이번 파업은 절반의 성공으로 아쉽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잘한 선택입니다.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진 않았지만 방송이 권력에 쉽게 장악되지 않는다는 좋은 교훈을 국민과 권력에 보여줬거든요.”

반면 한석현 서울와이엠시에이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실질적 성과가 없음을 지적했다. “공영방송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이라는 노조가 내건 두 사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귀한 것은 아쉽습니다.”

시청자들이 고대하던 ‘무한도전’을 조만간 다시 볼 수는 있을지 모르나, 문화방송이 처한 환경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조의 중도 복귀는 보도 공정성과 방송의 질 담보와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장 중간평가제 도입도 고려할 만

그런 면에서 다음달 초 구성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새 이사진에 관심이 쏠린다. 문화방송 노조는 노사 합의문 없이 파업에서 복귀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 기정사실이 된 마당에 총파업 체제를 유지하는 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조가 지칭한 것은 지난달 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체결한 합의문이다. 두 정당은 “8월 초 구성될 새 방문진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협조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을 합의했다. 노조는 이 합의문에 근거해 새로 구성될 방문진 이사들이 김재철 사장을 교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 합의에 대한 해석은 진영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는 지적(전규찬 교수) 또한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공영방송과 공공적 성격을 띤 언론사의 사장은 정부나 여당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방송 이사회나 방문진 이사진 다수를 여당이 선임하고, 이 이사들이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사장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내려보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서동구 사장이 임명됐다가 노조의 반발로 철회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사장 선임 구조를 포함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우선은 다음달로 예정된 한국방송과 방문진 이사진 교체 때에 야당이 협상력을 발휘해 야당 몫의 이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방송 이사회와 방문진 이사진 총원은 법적으로 정해졌지만, 여당과 야당의 추천 몫은 관행에 따라 정해진다. 현행 7 대 4(한국방송), 6 대 3(방문진)의 여야 추천 구도를 여야 동수나 여당이 반수를 약간만 넘도록 할당하면 이사들끼리 견제 논리가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대선 캠프 출신의 사장 선임 등 최악의 선택은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창룡 인제대 교수(언론정치학부)는 사장보다 사장을 뽑는 이사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비비시>(BBC) 이사는 방송 전문가로서 봉사한다는 자세로 일합니다. 반면 국내에선 연간 몇천만원을 지급받는 등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대우가 지나치게 좋아 너도나도 한자리하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며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영방송 이사의 특권을 없애야 합니다.”

정치권에 줄을 댄 ‘낙하산 이사’가 많을수록 이사회는 ‘낙하산 사장’의 거수기밖에 될 수 없다. 김 교수는 “도덕적 흠결이 없고 방송을 잘 아는 사람이 이사로 와서, 방송사 사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잘 검증해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사장 중간평가제’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글 문현숙 선임기자, 남종영 기자 hyunsm@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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