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상 전 <한국방송>(KBS) 사장
군사정권 시절 자유언론 수호를 위해 노력한 박권상(사진) 전 <한국방송>(KBS) 사장이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 고인은 4년 전부터 투병생활을 해왔다.
1929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52년 <합동통신> 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고, 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때 해직됐다. 런던 특파원으로 떠나 있던 75년 유신독재에 저항하다 무더기로 쫓겨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동료 기자들의 복직을 강력히 주장한 게 해직의 빌미가 됐다.
함께 일을 한 언론인들은 그를 그릇이 큰 인물로 기억한다. 86년 보도지침 사건 때는 국가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태홍·신홍범·김주언씨 등 해직기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증인으로 나섰다. 동아투위 출신인 김태진 다섯수레 대표는 “살벌한 군사정권 시절에 다들 겁을 먹고 증인으로 나서기를 꺼렸으나, 그는 법정에서 ‘우리나라는 언론 탄압이 심하다’ ‘이들은 언론인으로서 정당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에는 의정부 주재기자가 보도와 관련해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법정에 나가 변호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인 98년 초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작고 효율적인 정부조직’의 토대를 다졌다. 그해 4월 한국방송 사장에 선임돼 2003년까지 5년간 재임했다. 취임 당시 방송개혁과 경영합리화 등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한국방송 내부에서는 개혁의 내용과 폭을 두고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집권세력에 편향된 보도 태도에서 벗어나 방송의 중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았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쪽의 인사 관련 요구 등 정치적 외압을 막고 프로그램 제작 자율성을 보장했다는 평도 얻었다.
그는 고려대와 경원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언론의 명제> <권력과 진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규엽씨, 딸 소희·소원·소라씨, 아들 일평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7일 오전 예정이다. (02)2258-5940.
글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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