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종편) <티브이조선> 등은 ‘재미있는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각오가 남다릅니다. “파워와 유머를 겸비하고, 엔돌핀을 팍팍 올려 드리겠다”(<장성민의 시사탱크>)는가 하면, “심장이 쫄깃해지는”(<이봉규의 정치옥타곤>) 평론을 한답니다.
일부 언론학자들은 이런 ‘형식 파괴 실험’을 종편 출범의 장점으로 꼽기도 하는데요. 방송을 직접 보면, ‘무엇을 위한 형식 파괴인가’란 질문을 되뇌게 됩니다. 적대와 증오가 바탕에 깔린, 비방 겸 조롱성 ‘막말’이 넘쳐나기 때문이죠.
종편 관계자들은 “‘막말’ 방송을 심의해달라”는 시청자 민원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자주 불려 나옵니다. 정부·여당 추천의 심의위원들도 차마 대놓고 두둔하지 못합니다. 종편 관계자가 “풍자 특성을 고려해달라”고 하자, 한 정부 추천 위원은 “정치 풍자에 대한 공부를 좀 하셨으면 좋겠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공부 자료’로 떠오르는 방송이 있습니다. ‘형식 파괴 뉴스의 원조’인 <와이티엔>(YTN)의 <돌발영상>입니다. 2003년 “방송되지 못하고 버려진, 뉴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장면들”(노종면 전 와이티엔 앵커)을 모아 1분30초짜리 꼭지로 처음 시작된 돌발영상은, 시청자의 큰 호응 속에 3분짜리 정식 꼭지로 자리잡습니다. 기존 뉴스에서 보지 못했던,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의 생생한 말과 몸짓 등이 방송을 탔습니다. 2008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떡값 명단’을 발표하기도 전에, 청와대 대변인이 “자체 조사 결과,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리 브리핑한 사건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빗대는 등 ‘뼈 있는 웃음’도 자주 줬습니다.
돌발영상은 기존 뉴스 관습을 비튼 ‘혁신 정신’ 외에도, 빛나는 ‘기자 정신’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실세 정치인은 물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돌발영상의 풍자 대상에는 성역이 없었습니다. 풍자와 형식 파괴는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하는 등 ‘팩트에 기반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은 분명히 지켰죠. 2004년부터 5년 넘게 돌발영상을 만든 임장혁 기자는 “유머는 ‘수단’일 뿐, 공익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표”라고 말해왔습니다.
돌발영상은 탄생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공식적으로 폐지됐습니다. 사실은 2009년에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2008년 정권과 사장이 바뀐 뒤 처음으로 ‘결방 사태’를 맞는데, 돌발영상팀 소속 기자 3명 가운데 1명(정유신 기자)이 해고되고 1명(임장혁 기자)이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특보 출신인 ‘낙하산 사장’을 막고 방송 공정성을 지키겠다는 싸움을 하다 벌어진 일입니다. 이때 돌발영상을 처음 만든 노종면 앵커도 노조위원장으로 싸움에 앞장서다 해고됐습니다. 2009년 제작진이 바뀐 뒤에 다시 시작된 돌발영상을 보면 표피적 웃음이나 기계적 균형에 매달려 메시지 구축에 실패했고, 대부분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
정유신 기자는 해고 2245일째인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확정판결을 받고 복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와이티엔의 ‘킬러 콘텐츠’였던 돌발영상의 부활을 그려보지만, 아직 사쪽은 묵묵부답이네요.
시청자들에겐 아쉬운 대로, 돌발영상의 원래 정체성을 닮은 미디어협동조합 <국민티브이>의 뉴스 프로그램 속 ‘뉴스 혹’ 꼭지를 추천합니다. 돌발영상 창안자인 노종면 앵커가 진행하는 대안 뉴스 <뉴스 케이(K)>에 나옵니다. 노 앵커까지 함께 와이티엔에 복직하게 된다면, 그땐 제대로 된 돌발영상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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