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의 기자협회,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1개 직능단체들이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베 기자’ 임용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여론미디어팀 이정국입니다. 2012년 사회부 소속으로 경찰청에 출입할 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주폭’ 드라이브와 관련해 친절한 기자들(친기자)을 쓴 뒤 3년 만이네요.
여론미디어팀은 미디어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슈를 다룹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발표하는 미디어 정책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하는 심의,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 공영방송에서 발생하는 사건(?)들까지 모두 취재 영역에 속합니다.
이번 친기자에서 다룰 이야기는 ‘일베 기자’ 논란입니다. 일베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줄임말입니다. 일베가 어떤 곳인지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머게시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여성, 인종, 지역 차별적 내용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패륜’ 논란까지 나오는 곳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무한대로 확장한다 해도 이들의 행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자, 그러면 ‘일베 기자’는 무엇일까요. 지난해 12월로 올라갑니다. 공영방송 케이비에스의 신입사원 공채가 한창 이뤄지던 시기였습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 수상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일베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기자직 최종면접에 올라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합격자 발표가 나고 1월 정식 출근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익명 게시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의 케이비에스 게시판에 일베 출신 기자가 있다는 폭로가 나오고 그가 쓴 글들이 공개된 것입니다. 전형적인 ‘일베 수준’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었고, 많은 이들이 “말도 안 된다”며 분노했습니다. 케이비에스 사번으로 인증을 받아야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직원이 올린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 해당 합격자가 올렸다는 글들이 속속 추가됐습니다. 일베 기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를 검색해 찾아낸 글들입니다. 몇몇 미디어 전문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했고, <한겨레>도 취재에 나섰습니다.
취재 결과, 해당 합격자가 실제 일베에서 활동했던 것은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회사에선 추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기사를 써야 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입사 전에 올렸던 글들이고, 수습교육도 마치지 않은 ‘무늬만 기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식 기자로 발령을 받은 상태에서 그런 그릇된 인식을 공적인 공간에서 보였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공영방송 기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이기에 그에 합당한 제재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사건 초반 노조에서도 적극 나서지 않았습니다. 곧 사그라들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성회나 여기자회처럼 여성 직원들 사이에선 반발 여론이 워낙 강했습니다. 정식 임용일이 가까워올수록 회사 내 기자협회, 피디협회 등이 동참하면서 임용 반대 목소리가 커져갔습니다. “일베 출신을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일 이 합격자는 석달 동안의 수습교육을 마치고 정식 임용됐습니다. 이 기자는 다른 수습들처럼 경찰서를 돌면서 받는 취재 교육이 아니라, 제보 전화를 받고 기사 작성 교육을 받는 ‘나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임용 하루 전 케이비에스 내 11개 직능단체가 임용반대 공동성명을 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외부 법률 자문을 받았으나 입사 이전의 행위에 대한 징계 등은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회사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간부는 “해당 기자가 사표 내는 게 가장 깔끔하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이 기자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배치됐습니다. 북한과의 영상 교류 등 사업을 하는 부서로 보도 기능이 없습니다. 함께 입사한 동료들은 전부 사회2부로 발령이 났습니다.
일베 기자 문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여전히 직능단체들은 “사장과 공개 토론을 하자”며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일베 기자는 “앞으로 일베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고 합니다. 케이비에스에서 이 기자를 내보내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중요합니다.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회사 쪽은 이 기자를 품기로 했습니다. 미디어 담당 기자로서, 공영방송 케이비에스의 행보를 면밀히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조금 더 커졌네요.
이정국 여론미디어팀 기자 jglee@hani.co.kr
이정국 여론미디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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