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5년 징역형 선고가 나온 다음날(26일)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위부터 차례대로) 사설들.
<조선> <중앙> <동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된 다음날인 26일 사설을 통해 일제히 1심 판결 내용을 비판하고 나섰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의 ‘묵시적 청탁’ 관계를 인정한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하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청탁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삼성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있는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이 곧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금품 제공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두 피고인이 ‘묵시적 부정 청탁 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과 대통령 말씀 참고 자료, 장충기 전 사장의 휴대전화 문자 등의 증거와 정유라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청와대가 준비한 말씀 자료에 ‘지배구조 개편’ ‘임기내 승계 문제 해결’ 등의 내용이 등장하고, 정씨가 “엄가가 ‘삼성에서 말을 바꾸라고 한다’고 했는데, (삼성에서 말 교체를) 어떻게 모를 수 있는지 더 의문”이라고 증언한 것 등이 묵시적 청탁을 뒷받침하는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조중동은 이런 증거들이 이 부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할 정도의 ‘스모킹 건’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뇌물로 볼 수도 있고, 뇌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 정황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형사법의 원칙에 어긋나게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선>은 재판부가 ‘이재용 5년형 선고 이유를 마음속 청탁’으로 판단했다고 깎아내렸다. ‘서로 마음속으로 청탁을 주고받았는지는 이들 마음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이심전심 청탁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일 수도 있다. 이쪽이면 유죄고 다른 쪽이면 무죄다. 이는 증거가 아니라 판사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라고 전제한 뒤, ‘국민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명쾌한 판결을 기대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치 외풍과 여론 몰이 속에 진행된 재판의 판결 이유가 석연찮은 이심전심의 묵시적 청탁이다’라고 비판했다.
<중앙>도 ‘법리와 증거에 기반한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정황증거를 받아들였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기업이 권력의 반복적이고 적극적인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한 점을 감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도 ‘수동적 뇌물공여 법리가 논란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사설을 실었다.
조중동은 앞서 지난 23일 한명숙 전 총리의 석방을 계기로 여당이 당시 법원 판결을 비판한 것을, ‘헌법질서와 사법부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꾸짖었다. 특히 <조선>은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를 향해 삿대질하는 사람들이 지금 정권을 잡고 있다. 사법 독립성을 위협하고 재판 권위를 부정하는 권력의 공공연한 발언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 전 총리 사건도 돈을 건넨 건설업자가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 없다. 한 전 총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며 진술을 번복하는 등 ‘명시적 청탁 관계’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1심 재판부가 “돈을 줬다는 직접적 증거가 건설업자의 검찰 진술뿐인 상황에서 진술의 일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반면, 2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처럼 유무죄가 엇갈린 사건에서 한 전 총리의 친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쓴 1억원짜리 수표를 ‘결정적 증거’로 판단해 유죄를 확정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법원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던 조중동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판단했다’는 이유로 깎아내린 것이다.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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