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KBS)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당 도청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필모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방송 기자협회 제공
2011년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고대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진실이 드러나면 핵탄두급”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임원회의 기록에서 발견됐다. 고대영 당시 본부장이, 도청 당사자라는 의혹이 일었던 장아무개 기자의 휴대전화 교체를 지시했다는 정황도 함께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파업뉴스팀은 25일 공개한 ‘
새노조 파업뉴스’에서 “고대영 사장의 ‘핵탄두급’ 발언을 2011년 임원회의 발언을 기록한 자료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당 발언록은 김인규 사장이 재임했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방송 임원회의 발언을 기록한 ‘김인규 리더십 케이비에스(KBS) 임원회의 3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이준삼 당시 정책기획본부장이 작성한 문서다.
이 문서를 토대로 보면,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한달여 뒤인 2011년 7월25일 임원회의에서 고대영 당시 보도본부장은 “회사 내부서 갤럭시에스(S) 교체 후 반납 필요없다고 해서 놔둔 것 줬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이 장아무개 기자를 만나 직접 휴대전화 교체를 지시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당시 민주당의 비공개회의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일었던 장 기자는 사건 이후 경찰 조사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모두 분실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고 전 본부장은 이어 “한 가지만 더 얘기하면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면 핵탄두다. 회사 불이익과 관련돼 얘기 안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파업뉴스팀은 이를 두고 “(고 전 본부장이) 도청 의혹 사건 당시 회사에 불이익을 줄 만한 부도덕한 행동이 있음을 암시한 발언”이라며 “6년이 지나 검찰 재수사가 들어간 상황에서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대영 사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회의록은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논의에 한국방송이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했던 정황도 보여준다. 2011년 1월 말 김인규 당시 사장은 수신료 대책 임원회의에서 “연휴 중에 사설 통해 작업하라.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아닌 쪽, 문화(일보) 등 접촉 필요. 문방위원(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들 연휴동안 작업 필요”라고 지시했다. 이에 고대영 당시 본부장은 “오늘이라도 동원할께요(정치부 기자들)”이라고 답한다. 그는 2월 회의에서도 “정치부 기자들 맨투맨 접촉해라. 정말 수신료라면 소름 끼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요하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파업뉴스팀은 “케이비에스 정치부 기자들은 당시 수신료 인상 현장에 동원돼 의원들 설득 작업에 나섰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방송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어 파업뉴스팀의 보도를 반박했다. 한국방송은 “일부 언론이 근거라고 거론한 2011년 7월 당시 회의록 화면에 나타난 내용을 보더라도, 고대영 본부장은 ‘한국방송 기자가 관련되지 않았다’, ‘지시한 적도 보고 받은 적도 없다’는 내용 등을 강조하며 당시 경찰과 정치권, 일부 언론의 왜곡된 접근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방송은 이어 “근거 없는 왜곡 보도가 계속되는 데 대해 엄중 항의하며, 한국방송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 대해서는 법적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