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유튜브를 비롯해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Over The Top)의 파고가 높아지며 지상파·케이블 등 기존 미디어들도 생존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국내 업체들끼리 손잡는 ‘합종연횡’, 자체 웹콘텐츠에 투자하는 ‘자력갱생’, 넷플릭스에 업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적 제휴’ 등으로 나뉜다.
■ 합종연횡 3년 전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때만 해도 ‘위협 체감도’가 낮았다. 이용자들이 ‘유료 콘텐츠’에 익숙하지 않고 티브이 시청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 시장의 특성 때문에 코드 커팅(Code Cutting·유선방송에서 온라인 기반 미디어로 넘어가는 시청 행태)이 본격화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전세계에 콘텐츠 제작비로 8조원을 뿌려대는 넷플릭스의 공격적 투자, 유튜브의 급성장 등에 ‘코드’ 기반 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오티티 서비스 ‘푹’(POOQ)을 공동 투자, 운영해온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 3사는 몸집 불리기의 동반자로 오티티 ‘옥수수’를 서비스해온 에스케이텔레콤을 선택했다. 소극적인 마케팅으로 푹 이용자가 늘지 않자 지상파 3사는 콘텐츠 확대를 위해 <제이티비시>(JTBC), 씨제이이앤엠 등과의 협업을 타진해왔으나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자 지난 3일 에스케이와 함께 푹과 옥수수 조직을 통합해 새 법인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은우 문화방송 매체전략실장은 “3년 전 중국시장이 열렸을 때 시작하지 안았던 걸 후회할 정도로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 동남아시장을 겨냥해 한류 콘텐츠의 영향력 확대에 나설 것”이라며 “볼륨을 키우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통신사들도 ‘규모의 경제 효과’를 내세워 케이블방송 인수·합병을 위해 물밑접촉 중이다. 엘지유플러스는 올 상반기 안에 케이블방송 1위 업체인 시제이헬로 인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고, 케이티는 자회사인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이런 짝짓기가 성사될 경우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밀릴 것을 우려하며 아직 매물로 나오지 않은 유선방송업체 티브로드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자력갱생 방송사들은 2~3년 전부터 자체 웹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스비에스는 ‘모비딕’이라는 모바일 전용 브랜드를 개설해 젊은층을 겨냥한 짧은 자막과 편집, 화면구성 등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만들어 네이버티브이,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영상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엔 웹드라마보다 상영시간이 짧은 ‘숏폼드라마’라는 새로운 포맷의 <갑툭튀 간호사> 제작을 알려 눈길을 끌었다. 웹콘텐츠 <아이돌 드라마 공작단>과 웹예능 <모모문고>를 선보였던 한국방송도 지난달 푹을 통해 웹드라마 <넘버식스>를 공개했다. 웹드라마는 상영시간이 10분 안팎으로 공간과 출연자들도 단순한 유형이다. 저예산이다 보니 피피엘이 많고 유통도 네이버에 몰린다. 넘버식스를 만든 박기현 한국방송 디지털서비스기획팀장은 “넷플릭스의 오티티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웹드라마와 다른 차별성을 고민하며 실험적 시도를 했다. 크로스 미디어 콘텐츠로 생각하고 지상파 콘텐츠 수준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제이티비시는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띄워 10대들의 일상을 다룬 <두텁이의 어렵지 않은 학교생활> 등 웹드라마와 지오디 출신 박준형의 좌충우돌 리얼 예능 제작기를 다룬 웹예능 <와썹맨>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략적 제휴 아이피티브이와 케이블방송 등은 ‘어차피 막지 못할 파도라면 올라타자’는 태도다. 아이피티브이 업계에서 단독으로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고 지난해 11월부터 넷플릭스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는 엘지유플러스의 강신구 홍보팀장은 “콘텐츠 자체 제작에 한계가 있어서 좀더 영향력있는 콘텐츠업체와의 결합이 필요했다. 3위 사업자로서 가입자 증대와 고객에게 콘텐츠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와 현지 플랫폼 업체의 배분율은 전 세계적으로 9(넷플릭스)대 1로 알려졌다. 지상파나 일반 피피업체 등 국내 콘텐츠업체들과의 배분율은 통상 7대 3, 6대 4로 이에 견주면 넷플릭스가 가져가는 수익이 훨씬 많다. 엘지유플러스 쪽은 “구체적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9 대 1보다는 우리에게 유리하다”며 “넷플릭스는 데이터 압축·전송 등 뛰어난 기술력으로 고품질의 완성체라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상파 방송사가 회원인 한국방송협회는 엘지유플러스-넷플릭스 제휴에 대해 “국내 콘텐츠 제작산업이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하고, 이들에게 받는 수수료가 국내 콘텐츠 사업자보다 저렴한 점을 들어 유통질서를 교란시킨다”며 견제와 비판이 섞인 메세지를 내놨다.
케이블방송도 ‘넷플릭스 맞이’에 분주하다. 시제이헬로는 오티티 포털서비스인 ‘뷰잉’에 넷플릭스 채널을 열어놓았다. 이용자 선호 콘텐츠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처럼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알래스카’ 운영체계를 도입해 고객 맞춤형 콘텐츠도 추천하고 있다. 윤용 시제이헬로 부사장은 “소극적 방어로는 곤란하다. 넷플릭스가 우리 콘텐츠를 창작, 투자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딜라이브 또한 티브이를 통해 대형 화면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 시청이 가능하도록 별도의 오티티 박스를 제공한다.
콘텐츠업체인 피피(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들은 여전히 기대반 우려반이다. 넷플릭스가 플랫폼인 동시에 콘텐츠업체라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가치를 높이려는 플랫폼으로선 유익한 반면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하는 콘텐츠업체로 볼 땐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김세원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 팀장은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협력체제를 갖춰 해외 판로 개척에 용이할 수도 있지만 미디어 생태계를 망치는 황소개구리가 될 수도 있어서 일단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경쟁이 가능하려면 글로벌 오티티 공룡들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법이 적용되는 지상파·케이블방송과 달리 오티티는 통신법상에 ‘부가통신사업자’의 지위로 규정돼있다. 성기현 종합유선방송협의회 회장은 “방송은 규제가 많으나 오티티는 부가통신서비스여서 규제가 별로 없다. 똑같은 드라마라 지상파 티브이로 보면 방송법, 푹으로 보면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앞으로 지상파 차세대 표준은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티티 사업자에 대한 법적 지위와 금지행위 규제 등을 담은 제도개선안을 이달 안에 상임위에서 논의, 확정할 예정이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글로벌 오티티를 규제하기 위해 강도를 높이면 오히려 국내 사업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공정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용자 후생과 공익적 가치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