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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제작 혁신’ 못한 채 …‘방송사 노동단축’ 해법 찾기만 1년째

등록 2019-06-11 18:30수정 2019-06-12 09:44

내달 시행 닥친 ‘주 52시간제’
노사 ‘제작환경 개선’ 공감했지만
노동시간 단축 방식 두고 시각차
사, 재량근로 등 유연근무제 검토
노, 공짜노동 우려 속 자구책 찾기
7월부터 시행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 노동’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전엔 24시간 방송을 위해 무한정 연장노동이 가능했지만 지난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됨에 따라 ‘주 68시간’의 과정을 거쳐 주 52시간제 적용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노사 실무협상이 마무리된 방송사는 한 곳도 없다. 일부 재량·선택근로 등 유연근무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할 제작 시스템의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

■ 낡은 제작관행 개선 약속했지만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교육방송>(EBS) 등 지상파 방송 4사는 전국언론노조와 지난해 9월 △공정방송 △제작환경 개선 등을 위해 산별협약을 맺었다. 이때 노사가 큰 틀에서 합의한 제작환경 개선방안은 ‘주 40시간’을 노동시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업무상 불가피할 경우 연장할 수 있되 연장·야간·휴일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한 바 있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방송 제작 시스템을 개선하고, 인프라 확충과 적정 인력 확보 등 개혁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막상 주 52시간제를 놓고 노사 협상에 들어가자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다. 회사는 업무 성격상 불규칙한 업무시간과 초과노동이 다반사인 기자·피디·촬영감독 등에 대해 재량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언론노조는 재량근로에 대해 주 52시간제 취지를 무력화한다며 원칙적으로 반대 입장이다. 또 연장노동에 대한 수당은 시급 적용을 요구하며 포괄임금제를 거부한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사업장별로 불가피할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는 있으나 악용 소지가 있는 재량근로제를 받아선 안 된다. 재량근로는 계량화되지 않은 노동을 강요할 수가 있고 그림자 노동으로 이어지는 수단이 된다”고 강조했다. 자칫 보상받지 못하는 공짜노동을 우려하는 것이다.

KBS, 직원 10% 선택근로제 제안

노조 “건강권 우려 있지만 선시행”

MBC “인력·기자재 확충해 보완”

“사전기획 강화 등 개혁 시급” 지적

■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선택근로제’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협상이 가장 많이 진행된 곳은 한국방송이다. 드라마와 예능 일부는 노동자 재량에 따라 일하도록 하는 재량근로를, 시사교양이나 보도 등은 선택근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방송이 제시한 선택근로의 경우엔 노동시간 기준을 1주(52시간)가 아닌 4주 단위로 하여 월 208시간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방식이다. 사쪽이 제시한 선택근로 대상은 영상제작국, 보도·제작·기술본부 등 500명에 달한다. 이는 대략 전체 직원의 10% 선이다. 노조도 무조건 반대만이 아니라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해 현명한 자구책을 찾고 있다. 노사는 지난 4일부터 공동으로 공개 설명회에 나섰다.

선택근로는 아직 한 번도 시행해보지 않은 제도라 노조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여긴다. 노동시간이 과도하게 집중돼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와 방송 콘텐츠의 질 하락도 우려된다. 임현식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노사국장은 “전인미답의 길이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고 두려움도 있다. 일단 선택근로를 시작 뒤 조합원에게 손해가 없는지 감시하며 한두달간 불거지는 문제를 점검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량근로를 놓고도 일부 예능팀은 과도한 노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며 거부해 진통을 겪고 있다. 사쪽의 권오훈 혁신추진부장은 “제한적으로 유연근로제를 도입하되 장시간 노동 뒤에는 일정 시간 휴식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은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구성원들의 평균 노동시간을 점검한 뒤 효율적인 직무형태를 모색 중이다.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은 “주 52시간 노동 초과자를 계속 전수조사한 결과, 매달 감소 추세를 보였다. 원활한 제작을 위해 편집기 등 기자재 확대뿐 아니라 7월에 인력 충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택근로로 분류되는 시사교양본부 일각에선 수당 문제 때문에 본부별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승준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홍보국장은 “시간이 촉박해 선시행 후보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교육방송도 업무 재분장 등 대책을 점검 중이다. 에스비에스는 지주사인 태영건설과의 내부 갈등이 불거져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방송사 안팎에선 52시간제를 계기로 사전기획 강화 등 제도 개혁이 잇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뿐 아니라 시청자에겐 더 나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방편이다. 문화방송의 한 피디는 “방송계는 사전 기획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 사전에 공을 들이고 철저히 기획하면 사후 노동량이 대폭 줄어든다. 그런데 요즘은 리얼예능 의존도가 높아 촬영시간, 사후편집 등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라고 비판했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지상파들의 상황은 바로 드라마제작사나 프리랜서들에게도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협상이 험난하더라도 성급하게 합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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