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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검열 저항하다 쫓겨난 언론인 1000여명 ‘보상법’ 시급해요”

등록 2020-05-14 18:38수정 2020-05-15 02:36

[짬]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고승우 공동대표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대표가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 계엄사령부의 치밀한 보도검열과 기자해직 등 언론 탄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대표가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 계엄사령부의 치밀한 보도검열과 기자해직 등 언론 탄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에 대중 조작을 하며 언론 탄압에 나섰다. 결국 5·18 광주항쟁 때 기사 검열을 거부했던 언론인 1000여명이 불법적으로 강제 해직당했다.”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난 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나 40년 전 5월의 언론 상황에 대해 들었다. 그는 <연합뉴스> 전신인 <합동통신>에서 1980년 8월에 쫓겨난 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사회부장 등을 지냈으며,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아 언론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언론사회학 박사인 그는 서울시립대·고려대 등에서 14년째 강의도 하고 있다

5·18 항쟁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린 언론은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의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였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광주 참상에 침묵만 했던 것일까. 광주항쟁이 터지자 전국 언론사에선 기자들을 현지로 보내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을 취재했으나 모두 검열당해 국민은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그때 <합동통신> 사회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계엄사 검열관에게 검열을 받았던 고 대표는 “신군부가 10·26 사태 이후 선포한 계엄이 5월엔 전국으로 확대돼 언론 사전 검열이 더 까다로워졌다. 당시 검열 심의 기준은 전두환의 정권 탈취, 유신 철폐, 민주화·학생운동, 사회운동 관련 보도를 일체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5월의 봄’ 이후 계엄사 검열에 맞서 한국기자협회 중심으로 제작거부 운동이 펼쳐졌다. 사별로 기자총회 끝에 5월20일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기자협회는 2006년 이를 기려 5월20일을 ‘기자의 날’로 정했다. 고 대표는 “20일부터 27일까지 언론이 투쟁한 기간에 주요 언론사가 몰려있는 광화문엔 군 장갑차가 버티고 있었고, 전두환이 언론사 사장단을 불러 검열 거부를 중단하지 않으면 폐간시키겠다고 위협해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전했다. 당시 언론법은 신문·방송 등이 3일 동안 제작을 하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되는 악법이었다. 결국 언론들은 차장 직급 이상 중심으로 제작을 강행했다. “검열 거부자들은 윤전기에 소금을 뿌리자는 등의 강성 발언도 했지만,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계엄사는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가고, 약탈·방화 등을 한다며 언론사에 가짜·왜곡 뉴스를 제공해 결국 언론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통제를 받은 당시 언론은 진실 보도는커녕 신군부가 지시한 허위조작 정보를 그대로 전달해 내부 반발 등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언론의 암흑기였던 셈이다.

“80년 신군부 ‘검열 정보’ 광주 왜곡
제작거부 나선 언론인은 대량 해고”
“부마 등 다른 민주화 항쟁법 달리
5·18법은 해직자 빠져 개정 필요”

검열 맞서다 옛 ‘합동통신’서 해직
‘한겨레’ 창간 멤버로 언론운동 헌신

신군부는 언론 통폐합과 함께 대규모 언론인 해직도 강행했다. 해직 사유도 ‘국시 부정’ ‘반정부’ ‘검열 거부’ ‘부조리 인사’ 등으로 각각 나눠 해직 언론인들이 연대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사이비·부패 언론인 숙정을 명분으로 앞세워, 해직 언론인들을 범법자로 낙인 찍어 취업까지 제한했다. 그는 “언론 자유를 주창하다 1975년 강제 해직된 조선·동아투위 언론인들의 단결된 행동이 구심점을 발휘한다고 판단해, 신군부 언론대책반에선 다수를 몰아내되 구심점과 단결력을 파괴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전두환 시대엔 공작 정치 수법이 정교해져 대규모 강제 해직과 함께 악법인 언론기본법을 만들고 보도지침 등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여론 조작을 위해 언론인에게 아파트 제공, 세제 혜택 등 당근 정책도 동원했단다.

고승우 대표. 장철규 선임기자
고승우 대표. 장철규 선임기자

80년 언론인 강제 해직 사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대법원 판결 등으로 정치군인들이 정권 탈취를 위해 언론을 상대로 자행한 불법행위로 밝혀졌지만, 정확한 규모 등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민주화 항쟁과 달리 5·18법엔 해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논란이다. 그는 “광주항쟁과 80년 언론인 해직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취지로 발생한 역사적 사안이다. 4·3이나 부마 항쟁 등 여타 민주화 항쟁법엔 모두 해직자가 포함됐다. 그런데 광주항쟁 기간엔 전국 언론사에서 신군부 검열을 거부하고 부당한 제작 요구에 저항하다 해고됐음에도 특별법에서 언론인이 배제됐다. 이는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광주항쟁을 지역 문제로 국한하려는 신군부에 동조하는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사 경영진이 언론투쟁의 정당한 자리매김을 저지한 결과로, 역사 왜곡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한 언론인을 5·18 관련자로 포함하는 게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국회에서 이들 해직 언론인의 명예회복과 보상 법률안이 상정·논의되긴 했으나 처리는 계속 불발됐다. 전국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도 지난 8일 성명을 내어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80년 언론인 투쟁의 역사적 사실을 포함해 언론 역사를 바로잡고, 해직 언론인에 대한 배상법을 시급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입법·행정·사법의 3부에 더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의 공적 역할이 최근 크게 약화한 점을 우려하며 언론개혁의 시급성도 호소했다. 고 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종합편성채널을 4개나 선정해 자본의 언론 지배가 심화하도록 방송시장을 교란해 언론의 기본 토대를 파괴했다”며 “정보 생산과 소비가 뒤섞인 뉴미디어 환경에서 대중매체가 존립 근거를 확보하려면 공공성·공익성을 위주로 4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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