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종편 재승인 조건과 상관없이 법과 심의 규정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 그래도 관련 안건이 올라오면 좀 더 신중하고 집중적으로 심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종편은 관련 조항에서 ‘주의’ 이상 법정제재를 받으면 재심을 신청한다. 대부분 기각되는데 재승인 조건을 피하려고 법정소송에 나선다. 소송에서 결과가 뒤집히면 위원회 위상에 타격받을 수 있어서 위원들이 흠잡히지 않으려 꼼꼼하게 본다. 마음이 편한 게 아니다.”
강상현 방심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티브이(TV)조선> <채널에이(A)> 등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공정성·객관성 조항 ‘법정제재 5건 이하’를 조건으로 달아 통과시킨 이후 달라진 심의 양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방송사로선 매우 민감한 문제이고, 시민사회도 관심이 높은 것은 알지만 법정제재 건수가 재승인 조건의 전부 또는 핵심으로 부각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 특정 종편 기자들이 방심위에 상주하며 제재 수위 완화를 겨냥한 로비를 일삼는 것도 경계했다. “위원들에게 공정한 심의를 위해 외부 간섭을 철저히 배제하고 독자적 심의를 하면 좋겠다고 권장한다.”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언론학자 출신인 그가 2018년 1월 말 4기 방심위원장을 맡으며 내세운 원칙은 ‘심의 공정성’과 ‘심의 업무의 독립성’이다. 특히 ‘정치심의 타파’를 강조한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여당 추천 6명과 야당 추천 3명 등 9명으로 구성된 방심위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만 올라오면 6 대 3으로 뚜렷하게 갈려 ‘6 대 3 위원회’라는 오명 속에 ‘정치심의’를 한다는 비난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년여에 대해 “‘정치심의’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위원들의 자유로운 판단과 진술을 보장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의 전 사전 조율을 위한 위원들 모임은 모두 사라졌다.
부처 장관이 주도해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독임제와 달리 합의제 구조의 방심위는 위원들이 제재 수위를 올리거나 내리며 합의에 나선다. 강 위원장은 “합의제 정신을 살려 서로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치열하게 논의하되,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간 수십만건을 심의하다 보면 별의별 안건이 다 올라오는데 방심위가 저질 프로그램을 막는 정화 장치 구실을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쪽에선 ‘미흡하다’, 또 다른 쪽에선 ‘과하다’며 비판받는다. 심의 업무의 또 다른 딜레마”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이라 할 정도로 허위조작정보와 관련한 방심위의 일거리도 크게 늘었다. 강 위원장은 “가짜뉴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로, 특히 선거를 전후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곤 한다. 유튜브 등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고의로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여론을 호도한다. 그런데 가짜뉴스가 시선을 끌다가도 정통 언론의 팩트체크로 소멸하기도 한다”며 가짜뉴스 퇴치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역설했다. 이어 “가짜뉴스를 규제할 법적 장치의 미비로 시정 요구에도 어려움이 있다. 21대 국회의 또 다른 과제”라고 덧붙였다.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4기 체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양성평등 구현과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이다. 3기 방심위는 여성 위원이 1명도 없었으나 4기엔 여성이 3명이다. 여전히 50대 이상 남성이 주류지만, 젠더 감수성이 강조됨에 따라 성차별·혐오표현 등에 제재를 강화하는 추세다. 또 디지털 성범죄 소위를 꾸려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물에 대한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송·통신소위와 달리 매일 전자 심의를 한다. 문제는 서버가 외국에 있는 글로벌 사업자한테는 시정 요구를 강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강 위원장은 “지난 1월 국제 공조 점검단 출범 뒤 구글·페이스북 등 5개 글로벌 사업자가 불법·유해 정보 84%를 삭제 또는 차단했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헐뜯고 역사를 왜곡하는 콘텐츠는 그대로여서 한국의 사회적 배경이나 관련 판결 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거진 내부 위원의 일탈 행위도 고민거리다. 극우세력 옹호 발언을 자주 하는 이상로 위원은 유튜브에서 ‘세월호 참사 망언’을 해 본인이 의견진술 당사자가 됐고, 지난 총선 때 미래통합당 비공개 공천을 신청한 전광삼 상임위원이 노조나 언론단체의 자진사퇴 요구에 직면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 위원장은 전광삼 위원에 대해 “특정 정당에 공천 신청을 하고 면접에 참여한 행위는 명백한 정치활동이다. 계속 심의하면 공정성과 정당성을 의심받는다. 자진사퇴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위원은 소송까지 검토하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위원들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해촉을 건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부기관인 ‘방통위’와 독립 민간기구인 ‘방심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강 위원장은 방송·통신의 내용을 규제하는 방심위 역할에 대해 “위원회 영문 이름에 ‘스탠더드’가 들어간다. 심의 원칙은 지켜야 할 기준도 정해주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보여주기도 한다”며 “규제 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되기보다 사회 구성원과 제작자의 창의력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짚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