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기 열린편집위원회 열번째 회의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한겨레> 보도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부가 7·10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6·17 대책이 나온 지 한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관련 대책은 22개에 이른다. 7·10 대책에 이어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별도의 공급 대책도 발표되는 등 숨 가쁜 일정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눈과 귀도 부동산 이슈에 쏠렸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 모인 8기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은 <한겨레>가 부동산 관련 이슈를 어떻게 다뤘는지 살펴봤다. 열번째 열린 이번 회의에는 홍성수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강혜란 위원(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김미경 위원(한겨레온 편집위원), 박영흠 위원(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우태희 위원(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최지희 위원(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과 석진환 이슈부국장, 이정연 참여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홍성수 지난 한달간의 기사를 살펴보니 부동산 관련 기사가 양적으로 많았다. 1면에 여러 번 실렸고, ‘부동산 대책 오작동, 부글부글 민심’ 등 기획 기사도 있었다. 어느 때보다 부동산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룬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문제는 전통적으로 한겨레가 강점을 가진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각을 잡고 달려들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태희 한겨레가 부동산 대책의 비판적 지지자 구실을 했다고 봤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전후의 기사를 보면 흐름이라든지 변화, 실생활 적용 사례 등을 잘 보여줬다. 보수 언론이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걸 강조할 때, 공급이 능사가 아니라며 논리적으로 잘 반박했다. 7월16일치에 진명선 기자가 ‘공급 부족론 또 들썩, 재건축 규제 풀면 집값 잡힌다?’에 공급 부족론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이춘재 사회부장이 쓴 ‘참을 수 없는 민정수석의 가벼움’이라는 칼럼은 질타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강혜란 부동산 기사는 오랜만에 시원했다. 방향이 명확했고, 서민과 청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게 뚜렷하게 읽혔다. 특히, 비판적인 견해뿐만 아니라 대안의 기조가 분명했다. 보유세 강화 문제나 공공임대 확대 문제, 기존에 많이 나온 규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방향이 보였다. 관련 기사들은 깊이 있으면서도 정보량이 많아 유익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집값 추이 보도를 여러 차례 했다. 한국감정원 등의 자료로 쓴 기사였는데, 꼭 그런 기사가 필요했을까? 경제정의실천연합과 공공의창이 진행한 부동산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기사로 실었던데, 한겨레가 이런 설문 문항을 더욱 자세하고 충실하게 구성해서 시민의 관심사를 폭넓게 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 아쉬웠던 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두고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악영향을 강조했을 때 실제 서민들의 사연이나 이야기를 지면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지 않았던 거다. 당시 오피니언면에 서민의 목소리가 담겼는데, 좀 부족했다.
김미경 부동산 광풍이라고들 하는데, 부동산 ‘기사 광풍’이 일었다는 느낌이 드는 한달이었다. 사실 한겨레는 이런 광풍이 있기 전부터 보유세 강화나 공공주택 공급 등에 대해 꾸준히 다뤘던 것으로 안다. 한겨레가 지속해서 대안을 제시했지만, 정부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부동산 정책을 두고 이래도 부정, 저래도 부정하는 기사가 많았는데, 한겨레는 그 가운데서 중심을 잘 잡았다.
그런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한겨레가 소극적으로 보도한 것 아닌가 싶다. 보수 언론에서 개정안 시행으로 임차인도 손해를 보는 것처럼 여론을 형성했다. 하지만 임차인을 보호하는 제도는 한국이 너무 늦게 도입했고,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가 아니다. 임차인에게 이런 보호법이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등에 관해 국외 사례 등을 풍부하게 인용해 정보를 제공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지희 부동산 기사를 보면 ‘몇억, 몇억’하는데, 청년에게는 참 동떨어진 세상 같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이라는 뚜렷한 이슈를 두고 한겨레가 전반적인 팩트체크를 해줘서 좋았다. 좋은 기사 중에 진명선 기자의 이름을 자주 본다. 기존의 부동산 기사라고 하면 시세나 개발 계획 등에 치중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진 기자는 ‘왜 영끌까지 해서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어 할까?’라는 근본적인 지점을 짚고, 현상과 원인을 연결 짓는 기사를 꾸준히 써주고 있다. 한겨레가 청년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두고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고,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꾀하는 시도들이 의미 있어 보였다. 청년들은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여서 화난 게 아니다. 그들은 기존 체제에 편입하지 못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보는 거다.
서민·청년 입장서 시원하고 명확
대책 흐름·변화 등도 잘 보여줘
대안 기조 분명하고 정보도 유익
부동산 관련 기사에 전문가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중립적인 입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분들이 많다. 한겨레는 그래도 다른 언론보다 낫지만, 취재원 다양화에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박영흠 부동산 보도가 이념적이라는 건 많은 사람이 동의할 거다. 한겨레가 부동산을 둘러싼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하는 한 축이기에 사설 등에서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보이는 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담론 투쟁 또한 사실에 근거해서 이뤄져야 한다. 특히 개별 사례를 제시하는 부동산 기사에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현장성과 구체성을 보여주기 좋은 형식이라고 이해하지만, 보수 언론은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사례를 성급하게 일반화해서 ‘세금 폭탄’ 등의 표현을 내세운다. 한겨레도 이 부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부 사례가 사실이 아닌 건 아니지만, 과연 전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통과 직후 나온 한겨레 기사 ‘뛰는 전셋값 잡겠지만… 전세→월세 전환 가속화할 듯’이라는 기사에서 임대료 인상 부담이 줄어드는 것에 안도하는 한 세입자의 사례를 들었다. 이 사례와 동일한 상황에 놓인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사실과 동떨어진 코멘트라고 했다. 임대인이 전셋값을 지나치게 높게 부를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한겨레 기사 속 사례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별 사례나 취재원을 인용해서 어떤 흐름이나 분위기를 한쪽으로 단정하는 게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양쪽의 흐름을 다 같이 보여줄 때는 개별 사례를 드는 게 위험할 거 같지 않은데, 시장이 이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개별 사례 이용에 신중했으면 좋겠다.
홍성수 ‘부동산 대책 오작동 부글부글 민심’이라는 연재 기사가 있었다. 거기를 클릭하면 나오는 묶음 기사가 15편이나 됐다. 이런 연재 기사 중 기사량이 가장 많았던 듯싶다. 한겨레 홈페이지에서 주요 이슈를 상단에 보여주는데 ‘부동산 대책’이 있더라. 이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게 편집 방침에서 드러난다.
연재 기사에는 평소 궁금했던 것이 잘 정리되어 실려 있었다. 기사의 관점이나 접근 방법에 일관성이 보여서 상당히 많은 준비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부동산 정책 관련해 대안 제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기존 대응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짚는 건 좋은 출발점이었다. 연재 기사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를 보면 행정 수도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뒤늦은 공급 확대가 의미가 있을까 등의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종합부동산세 문제, 2030 투자 열풍과 관련한 세대 갈등, 젊은 세대의 고충 등을 잘 짚어줬다. 궁금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쟁점을 짧은 기간 내에 일관된 관점으로 소화했다.
제 기억으로는 과거 한겨레가 공공임대주택 관련해 소셜믹스 문제를 꽤 많이 보도했다. 외국 사례도 소개도 했었다. 최근 주택 공급 대책이 나오자 공공임대주택 짓는 걸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컸다. 예전에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조심스럽게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주민들이 노골적으로 그것만큼은 못 받는다고 하더라. 대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건 충격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문제들을 한겨레가 예전에 다뤘던 소셜믹스를 활용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지 조금 더 짚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장 흐름 단정할만한 사례는 신중해야
범주 분류 ‘부동산→거주’ 어떨까
석진환 사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이번 부동산 이슈 보도와 관련해 편집국 차원의 고민이 많았다. 워낙 파급력이 크고 모든 이들이 각각 서로 다른 관점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라서 내부적으로 보도 방향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부 대책을 폭주로 몰아가는 보수 언론의 왜곡과 과장이 너무 심해서 한겨레가 좀 더 적극적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과 긴장감도 있었다. 또 기존에 한겨레가 주도적으로 다뤘던 개혁 이슈가 아닌데다, 시민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 엄밀히 말해 집값의 비정상적인 상승에 화가 많이 난 상태라서 이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위원들께서 부동산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고, 개별 사례 인용 문제를 지적해 주셨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시장과 자산’이 아닌 ‘주거복지’ 쪽에 방점을 두려는 한겨레가 안고 있는 오래된 고민이다. 워낙 많은 이슈가 불거지고 이에 대응하느라 그 부분을 소홀히 했을 수 있는데, 좀 더 토론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겠다. 장기적으로는 주거와 주택 형태, 공공임대주택 등의 문제를 깊이 다뤄보려고 한다. 9월부터는 보유세 강화 등 정부의 이번 대책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고, 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
최지희 한가지 제안을 하자면, 홈페이지의 부동산 관련 기사 카테고리가 ‘부동산’이라고 되어 있던데, 이걸 한겨레만이라도 바꾸면 어떨까? 집이라는 건 ‘주거’에 포함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주거 대책 등에 대한 기사는 사회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도 하더라.
김미경 동의한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곧 ‘돈’ 같은데, 거기에는 철학이 없다. 하지만 주거는 철학이 있는 단어다. 집값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주거 방식을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정리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녹취 설선정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8기 열린편집위원들은 2020년 7~8월의 좋은 기사로 기획 기사 ‘위력은 어디에나 있다’를 꼽았다. 관련 기사 중 ‘성폭력 발생시 동료 역할은? 상사 역할은?’에 대해 우태희 위원은 “기사를 보고 일터에서 매뉴얼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더라. 정말 좋은 기사였다”고 평가했다. 열번째 회의 주제인 부동산 관련 기사도 여러 편이 이달의 좋은 기사 후보에 올랐다. 사회부 임재우 기자가 ‘더 친절한 기자들’ 코너에 쓴 ‘검찰 수사심의위원 로또처럼 뽑으니 공정하다고?’는 후보에 올랐으나 안타깝게 선정되지는 않았다. 이 기사를 좋은 기사로 추천한 박영흠 위원은 “중요한 사안인데도 모르고 넘어갔던 부분을 파헤쳐줘 좋았다”고 말했다.
1. [기획] 위력은 어디에나 있다
사회정책부 황예랑·박다해, 사회부 박윤경·강재구, 전국부 최예린 기자
심사평: “‘위력’이라는 말을 접하고 이해하고 나니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말이 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다.”
2. ‘공급 부족론’ 또 들썩, 재건축 규제 풀면 집값 잡힌다?
경제부 진명선 기자
심사평: “공급이 필요한 곳도 있지만, 만능은 아니다. 그 지점을 명확하게 짚어줬다.”
3. 조폭·저승사자가 우리 동네 명물? 애물단지 된 공공 조형물
전국부 박수혁·최상원·박임근·이정하·김용희·김일우·최예린 기자
심사평: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의문인데 현실과 원인을 잘 분석해서 좋았다.”
4. 한겨레, 온실가스 수치 매주 보도
사회정책부 박기용 기자
심사평: “온실가스 수치를 매주 보도한다는 게 참 반갑다. 또한 그 의미와 맥락을 기사로 잘 설명해줬다.”
5. 최숙현, 수백번 “죽고 싶다”… 경주시청 팀은 ‘지옥’이었다
문화부 이정국·김창금·이준희 기자
심사평: “경주시청팀의 문제를 넘어 한국 엘리트 스포츠 전반의 문제를 조망했다.”
6. 토요판-성적 수치심, 안 느꼈는데요? ‘성적 빡치심’을 느꼈어요
토요판부 석진희 기자
심사평: “여성·약자의 울분이 가득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기사.”
이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