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필자(앞줄 맨오른쪽)의 장인 김두원(앞줄 왼쪽 세째)씨의 생일 때 경남 산청의 처가택에서 2남2녀 가족들이 함께 했다. 사진 박춘근씨 제공
“박 서방, 왔나?” 하시며 반가이 손잡아 주던 아버지! 가타부타 말없이 천장만 보고 누워 계신다. 배가 등에 들러붙은 형국이다. 퀭한 눈 감고 입은 벌린 채 가쁜 숨 몰아쉬다가 이따금 눈을 끔벅거린다. 아내는 침대 밑으로 축 처진 아버지의 왼손을 잡고 손가락 마디마디 조물거린다. 간간이 웃음기가 번지지만 찡그린 표정도 감추지 않으신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요구르트 한 방울로 입술을 적셔 드린다. 손끝 마디마디 거스러미 깊게 갈라지고 손톱이 겹으로 보인다. 핏기 없는 손톱 밑으로 다른 손톱이 보인다! 손톱이 새로 나요. 아부지…!.
그로부터 사흘 뒤 2019년 2월 19일, 장인어른(김두원)을 산청장례식장으로 모셨다. 1934년 일제 때 태어나 열일곱에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1972년 대방동 해군본부에서 상사로 제대할 때까지 포항·진해·백령도·김포·베트남을 전전하신 아버지! 하얀 국화꽃으로 싸인 아버지의 영정이 오롯하다. 대통령 김대중이 주는 국가유공자 증서, 대통령 노무현이 주는 참전용사 증서, 그리고 태극기와 훈장이 가지런히 아버지를 받들고 있다.
지난해 2월 별세한 필자의 장인 고 김두원씨는 예비역 해군 상사로 국가유공자와 참전용사 증서를 받았다. 사진 박춘근씨 제공
이어 2월 22일 오전 7시, 이승에서 아버지를 뵙는 마지막 순간이다. 가지런한 은발, 깊게 팬 주름살, 신령님 눈썹, 온화한 눈매, 오똑한 코, 그리고 도톰한 입술 등 비록 여위었지만 생전 모습 그대로다. 금세 일어나 경운기를 몰고 마실이라도 가실 듯 평온하다. 줄줄이 나가서 술 한 잔씩 올린다. 마지막으로 찬물에 밥 말아 올리고 다시 재배한다. 장례지도사는 한껏 근엄한 표정으로 향불을 거꾸로 꽂고 국화꽃 한 송이를 들어 촛불을 끈다.
지리산 천왕봉 동북쪽에 있는 산청군 오부면 안골, 아버지 살던 집에 먼저 들렀다. 완연한 봄빛이다. 냉이를 비롯하여 꽃다지, 개불알풀, 꽃마리, 광대나물, 민들레, 방가지똥 등 남도의 들풀 죄다 꽃단장하고 아버지를 맞이한다. 담 밖의 석류나무에는 대여섯 개의 빛바랜 열매가 말라붙어 있고, 부각과 장아찌가 그만이라며 손수 잎을 따 주시던 초피나무가 빈집을 지키고 있다. 열린 삽작문 사이로 수피만 앙상한 고종시(감)가 뱀허물처럼 눈에 차는데, 크고 작은 분에 담긴 대파·설화·상사화가 장항아리와 키재기를 한다. 텅 빈 마구간과 잡동사니 가득한 헛간 시렁 위로 찬바람만 도는데 뒤란 곳곳에 부추, 상추, 대파, 머위가 제법 많이 올라왔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주무시는 앞산, 소룡산(巢龍山)을 바라보며 하직을 고한다.
그날 오전 9시 16분, 진주시 안락공원에 도착했다. 태극기에 덮인 참전용사는 1번 화장로 앞에 멈춘다. 마지막으로 관등 성명을 대듯 성함을 확인하고 고별 인사를 올린다. 저승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가신다. 수십 개의 눈이 함께 빨려 들어간다. 여든여섯 해가 일순간에 저무는데 매정하게 앞만 보고 걸어가신다. 저리도 차갑고 모질게 가시는가. 정을 떼려고 짐짓 저러시는 게지. 철커덩 문이 닫히고 1번방 불이 켜진다. 칠남매 중 홀로 남은 막내 고모님이 먼저 울음을 터뜨린다. 삼키고 있던 생울음들이 비져나온다. 이윽고 화장로를 나온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살갑던 모습도, 온화한 목소리도 장대한 기골도 모두 간데없다. 숨소리까지 멎은 듯 일련의 분골과 습골 과정은 메마른 시간의 연속이다.
오전 10시 46분, 국립산청호국원으로 향한다. 붉은 피라칸타 열매가 조랑조랑 맺혀 있고, 남천 이파리와 열매는 유난히 새빨갛다. 군데군데 통째로 떨어져 더 슬픈, 동백꽃은 붉다 못해 거무스름하다. 춥고 앙상한 겨울 홀로 봄빛 드세우더니 그리 쉬이 지고 마는 것을. 묵직한 삶, 한목에 접으니 가는 이 눈감지 못하고 보내는 이 차마 눈맞춤을 못한다. 시린 가슴 보듬고 뒤돌아 본 세월. 아, 동백은 아버지의 핏빛이었다.
불현듯 정태춘이 울부짖는다.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 묻기 전까지,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 묻기 전까지….” 박춘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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