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좋은세상연구소 설립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
“아직은 미미한 시작이죠.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퇴임을 앞둔 동료 학자들,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동년배들에게 하나의 역할 모델로 보여주는 의미는 있겠죠.”
내년이 정년인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는 올해 1월 좋은세상연구소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다. 청년 및 교사들과 함께 공부하고 회원 및 시민 대상의 포럼도 열어 참여자들이 한국 사회와 역사를 읽는 힘을 갖게 하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공론도 형성하려는 의도다. 현재 회원은 100여 명이며 김 교수 책 애독자인 한 재미동포는 2천만원을 후원금으로 내놓기도 했단다.
작년 여름에 시작한 5주 일정의 청년독서모임은 그간 4차례 했고 교사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독서모임은 최근 2기 수료자가 나왔다. 독서모임은 우선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2022), ‘전쟁과 사회’(2020) 등 그의 저술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외에도 ‘교육의 시장화’ 등을 주제로 한 교사 대상 강좌도 여러 번 열었고, 메모리얼 투어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 쟁점에 대해 줄곧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인 사회참여형 학자이다. 한국 노동문제 연구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참여연대 정책위원장과 참여정부 시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박사 과정을 밟기 전인 20대에는 고교 지리교사로 5년 재직하며 교육민주화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깊이 살핀 저작 ‘전쟁과 사회’(2000)는 영어와 일본어, 독일어로 옮겨 출간되었고 최근 프랑스어 번역도 검토 중이란다.
지난 20일 경기 고양시 백석역 근처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왜 연구소인지 묻자 그는 윤석열 정부 이야기를 꺼냈다. “작년 여름부터 윤석열 정부를 보면서 너무 암담해 어떻게 살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 탓에 불면증까지 왔죠. 그래도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가르치기와 글쓰기이니 청년들과 함께 책을 읽자고 생각했죠.”
그가 소장으로 있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교육부 위탁으로 4년 수행한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제도화’ 연구가 현 정부 들어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중단된 것도 영향이 있었단다.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각 시도교육청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생기는 등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정권이 바뀌어 대학에서 할 수 없다면 저라도 연구소를 만들어 민주시민교육 연구의 불씨를 남기고 싶었죠.”
정년 1년 앞두고 올해 초 만들어
청년과 교사·전문가 독서모임
교사 대상 강좌와 역사 기행도
“윤 정부 보며 암담해 불면증까지
이승만 시절 정치행태 보는 듯” “한국사회 극도의 불평등 풀려면
시민들 자기 목소리 낼 수 있어야” 그는 현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다. “1987년 이후 30년 이상 이룬 민주주의 성과가 다 무너지는 양상입니다. (윤 정부는) 이승만 정부와 비슷해요.” 이유를 물었다. “대법원 판사나 장관 인사를 보세요. 전문성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자기 심복을 임명해요. 그것도 약점 많은 사람을요. 약점 많은 사람이 절대 충성하거든요. 이승만 정부가 그랬어요. 여당 내에서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도 그래요. 노골적인 친부자 정부라는 점도요. 이승만 때처럼 노골적인 정치폭력은 없지만 지금은 검찰이 이승만 정부 때 정치깡패와 경찰,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를 대신해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압박하고 있어요. 현 정부에서 연 보조금이 138억원으로 늘어난 자유총연맹에는 극우유튜버들까지 자문위원으로 결합했더군요.” 왜 청년 공부모임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몇 년 청년팔이가 유행이었잖아요. 여러 정당에서 온갖 프로그램으로 청년을 정치에 동원했어요. 하지만 이 청년들 중 일부는 정치를 위한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측면도 있었어요. 저는 청년이 공익 활동이나 정치 현장에서 제대로 서려면 사회 현장 경험에 더해 인문사회나 자연과학의 기본 소양도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대학을 봐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사회참여형 학습 동아리가 대부분 사라졌어요.” 왜 교사인지도 궁금했다. “사람들 의식은 교육과 미디어 수준을 못 넘어선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죠. 하지만 교사들은 자기 전공을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그는 ‘평화통일 교육’을 예로 들었다. “역사와 사회 교사들은 평화통일 내용이 윤리 교과서에 나오니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사들이 문제의식을 넓혀 민주시민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럴 때 교사운동이 시민운동과 만날 수 있죠.”
는 여러 저술을 통해 반공자유주의와 기업국가, 시험능력주의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깊이 살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뭘까. “극도의 불평등과 박탈당한 사람들의 무력화입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국민으로 쪼개져 있고 하층은 맞대응할 수 있는 저항 수단도 무장해제된 상태이죠.” 이는 결국 정치가 해결해야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너무 약해 문제를 풀 장단기 비전을 못 만들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민주당은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한 정책 대안이 너무 없어요. 제3당은 교섭단체 의석도 없고요. 현 정부가 감세해 복지 제도에 영향을 주는 문제나 대통령실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야당 의원들이 정면으로 문제제기하며 싸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민주당은 무기력하고 진보정당은 실패했죠.”
그는 ‘전쟁과 사회’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전쟁의 내재화, 즉 전쟁이 정치와 사회의 운영원리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썼다. 1980년 광주학살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일본의 자민당 집권 70년은 한국의 국가보안법(1948년 제정) 체제와 거의 같은 현상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정치열정은 뚜껑이 열리지 않았어요. 선거라는 구멍 하나만 있을 뿐이죠. 동아시아 냉전 체제의 틀을 깨지 못한 결과이죠.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가 법의 보호를 받고 검찰이 저렇게 수사를 하고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있는,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극우반공주의 세력만 집권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에 그는 “시민사회의 자력화(empowerment)”를 말했다. 청년이나 교사 등 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세운 연구소의 지향이기도 하다. “평화 체제는 사회경제적 문제와도 연동되어 있는데요. 그쪽으로 가려면 미·중 패권과 같은 국제정치가 가장 큰 변수이지만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국내 정치의 변화인데 이를 위해서는 시민이 깨어 목소리를 내야죠.”
다음 달 신간 ‘한국의 사상통제’를 내는 김 교수는 ‘전쟁과 사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큰 특징으로 잔인함을 들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모든 학살은 잔인하지만 한국전쟁 시기 학살은 동족 간 학살이라는 점에서 더 잔인했죠. 서로가 서로를 잘 아니 사적 원한까지 더해졌어요. 이승만 정권의 군인과 경찰이 가졌던 도덕적 콤플렉스도 한 원인이죠.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 과거 그들의 불법이나 부도덕함을 감추려고 아이와 노인까지 죽여 씨를 말렸죠. 해방 뒤 마을 주민들이 그들을 괴롭힌 일제 부역자에 대해 ‘저놈 죽여라’고 할 때 ‘사적 보복을 하지 말고 정부 수립 뒤 법적으로 처리하자’고 말린 사람들이 대체로 한국전쟁 전후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죠.”
(연구소 사이트 https://linktr.ee/goodsociety1989?fbclid=IwAR1o6AS6bE_mfYZ1V3LF4pZndoQzjd4SN0tYGF-ijfEwircAWAQWdx2Z3hI)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김동춘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청년과 교사·전문가 독서모임
교사 대상 강좌와 역사 기행도
“윤 정부 보며 암담해 불면증까지
이승만 시절 정치행태 보는 듯” “한국사회 극도의 불평등 풀려면
시민들 자기 목소리 낼 수 있어야” 그는 현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다. “1987년 이후 30년 이상 이룬 민주주의 성과가 다 무너지는 양상입니다. (윤 정부는) 이승만 정부와 비슷해요.” 이유를 물었다. “대법원 판사나 장관 인사를 보세요. 전문성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자기 심복을 임명해요. 그것도 약점 많은 사람을요. 약점 많은 사람이 절대 충성하거든요. 이승만 정부가 그랬어요. 여당 내에서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도 그래요. 노골적인 친부자 정부라는 점도요. 이승만 때처럼 노골적인 정치폭력은 없지만 지금은 검찰이 이승만 정부 때 정치깡패와 경찰,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를 대신해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압박하고 있어요. 현 정부에서 연 보조금이 138억원으로 늘어난 자유총연맹에는 극우유튜버들까지 자문위원으로 결합했더군요.” 왜 청년 공부모임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몇 년 청년팔이가 유행이었잖아요. 여러 정당에서 온갖 프로그램으로 청년을 정치에 동원했어요. 하지만 이 청년들 중 일부는 정치를 위한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측면도 있었어요. 저는 청년이 공익 활동이나 정치 현장에서 제대로 서려면 사회 현장 경험에 더해 인문사회나 자연과학의 기본 소양도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대학을 봐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사회참여형 학습 동아리가 대부분 사라졌어요.” 왜 교사인지도 궁금했다. “사람들 의식은 교육과 미디어 수준을 못 넘어선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죠. 하지만 교사들은 자기 전공을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그는 ‘평화통일 교육’을 예로 들었다. “역사와 사회 교사들은 평화통일 내용이 윤리 교과서에 나오니 자신들의 담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사들이 문제의식을 넓혀 민주시민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럴 때 교사운동이 시민운동과 만날 수 있죠.”
연구소 역사탐방 모습. 김동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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